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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Nov 19. 2023

인간 사이에 묻혀있던 삶을 꺼내보는 시간

[라라크루 문장 공부에서 시작된 생각의 확장]

인간은 광장을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그가 밟아온 길은 그처럼 갖가지다. 어느 사람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 라느니 하는 소리는 당치 않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 최인훈, <서문>, 《광장》, 정향사, 1961


<나의 문장>

인간은 끊임없이 혼자 있기를 갈망하지만, 혼자 살 수만은 없다. 살기 위해서는 내 몸을 타인의 삶에 비비적거려야 한다.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쉽기는커녕 때론 너무 고되고 힘이 들어 눈물에 패배하고 만다. 생계를 위해 타인에게 이바지하는 노동의 결과는 언제나 기대를 저버린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평등하다. 육체적 노동도, 정신적 노동도 타인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을지언정 정작 자신은 만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타인을 완벽하게 만족시킨다는 말조차 어느 날 갑자기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일만큼 허황한 꿈이므로 천재 시인 이상이 지은 활자로만 느낄 수 있는 심상에 불과하다.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대신 틈새의 시간이 탄생했다. 사람들 속에 섞여 있더라도 이 시간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순간이다. 이때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은 생산성과 거리가 멀다. 나의 대표적인 틈새 시간은 퇴근길이다. 그 시간이 되면 종일 감춰두었던 여린 신부 같은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지난 금요일 밤엔 하늘을 은은하게 꾸미는 초승달 반지의 아름다움에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얼굴을 스치는 스산한 한기는 밤하늘이 내 머리에 씌운 면사포로 바뀌었다. 걸음걸이는 일순간에 느려졌다. 상상이 만든 은하수 위를 천천히 건너자 오직 나만이 아는 밤의 의식이 시작되었다.


일렁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방법이 없어 아무도 몰래 눈물을 훔쳤다. 이때의 눈물은 고난이 아닌 기쁨의 상징이다. 이 짧고도 거룩한 시간에 영혼은 치유 받는다. 이것이야말로 사람 사이에서 쓸쓸함이 있는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이다.


 나는 다만 마음을 다해 내 인생을 사랑하고 싶다.


#라라크루 #오늘의문장 #글로빛나는글쓰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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