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희정 Jun 25. 2022

꿈은 크고 몸은 작고 마음은 무한하다.

브런치 입문 수기

브런치에 합격했다.


올해 새벽 기상 챌린지를 시작하며 기상 인증을 위해 시작했던 인스타에 조금씩 온라인 인연이 늘어가는 기쁨을 느꼈고 누군가 봐준다고 생각하니 좀 더 공을 들이고 싶어 새벽 일기를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일기에 달린 작은 칭찬들로 한껏 고무되어갔다.

그때 인연들로부터 처음 들었던 말 브런치.

처음에는 그게 뭔가.. 먹는 얘긴가 그랬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의,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막상 글쓰기를 더 해보고 싶어서 글쓰기 크루에 가입하고 보니 크루 사람들 대다수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나도 가입해야지 하고 그제야 어플을 다운로드하였는데, 어라? 이거 자기소개서와 계획서를 내야 한다. 게다가 심사 후 통과된 사람들만 받아준다고 하니 무슨 어플이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

자기소개서란 단어만 봐도 하기 싫어서 갑자기 편두통이 생길 것만 같았다.

평생 개성 없는 삶을 산 사람으로서 그 옛날 취업을 위한 이력서를 썼을 때조차 마땅히 메울 말이 없어 국민학교 시절 했던 국민체조처럼 뻔한 출발로 첫 줄을 채웠다.

7080 세대라면 다 공감한다는 인자하신 아버지와 엄격하신 어머니, 아니 엄격하신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였나? 아무튼 그런 우리 엄마 아빠와는 하등 상관없는 국민대표 부모님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문장을 직장을 바꿀 때마다 차를 우려내듯 몇 번이고 활용했다.

그다음 순서는 그런 부모님 중의 맏이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책임감 있게 자라왔었다는 둥, 성실함은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는 둥, 다 읽지 않아도 뻔한 결말이 예상되는 그런 틀에 박힌 이야기로 욱여넣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 와서 나를 드러내려니 갑자기 자아성찰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가볍게 쓰자니 깃털보다 가볍고 깊이 파고들자니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이다.


에잇 모르겠다. 일단 시험 삼아 한번 써보자고 결정하고 평범한 나에 어울리는 글을 성글게 뜨개질하듯 썼다.

계획서는 더 가관이었다.

평범한 자소서에 걸맞게 성의라곤 눈뜨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충 한 줄 휘갈겼다.


결과는 광속으로 탈락.

그래 계획서는 내가 봐도 좀 심했어.

계획서를 조금 수정해서 다시 신청했다.


그리고 또 탈락.

당연한 결과다.

사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분 뭐지?


갑자기 온갖 자기혐오와 복잡한 심리적 내면 갈등, 날개 없이 추락하는 우울증이 한꺼번에 덮쳤다.


이제 막 시작된 꿈이 한순간에 말라서 쪼그라들었다.

꿈의 가뭄이 생긴 자리는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으로 못난 감정의 기운이 새어 나왔다.

독서모임 멤버들이 그 어두운 기운을 눈치챈 듯 글쓰기는 잘 돼가고 있냐고 독서토론 중간에 사려 깊게 물었다.

투협한 마음이 그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호기롭게 온라인 인연들에게 선언했는데 떨어져서 너무 창피하다고.

그나마 희미하게 있던 자신감이 산들바람에도 쓸려 날아갈 것만 같다고.


멤버들의 위안이 상처엔 마데카솔처럼 영혼의 생채기에 포근히 도포되었다.


그리고 그때 라이프 코치를 꿈꾸며 코칭 과정 훈련 중인 한 멤버가 전율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넌 떨어졌기 때문에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거야."  


어리석음으로 신음하고 있던 영혼을 시원하다 못해 시린 계곡 물에 담근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로 그렇다.


나는 내가 원하는 길에 이제 막 들어섰고 이제부터 예정된 역경과 고난들은 밟고 지나가야 할 크고 작은 돌멩이 들일뿐이다. 


쉬운 길이 아닌 어려운 길을 가야만 내 발은 더 단단해진다.


그녀는 자신이 트레이닝 코스에서 배운 거라며 아침마다 하는 주문도 가르쳐 주었다.


All I need is within me now.

내게 필요한 건 지금 다 내 안에 있다.

I am confident.

난 자신 있다.

I can do it.

난 할 수 있다.

Yes, Yes, Yes!

그래, 그래, 그래!


우리는 다 같이 복창하며 웃었다.

나는 밝은 웃음 속에 눈물을 숨겼다.

그녀 말이 맞다.

나는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그로부터 며칠간 아침에 눈뜨면 손을 하늘로 한껏 쳐들고 그 구호를 외쳤다.


네이버에 브런치 작가 되는 법도 검색해보고 통과한 작가들의 글을 훑었다.

계획서도 번호를 달아가며 계획적(?)으로 썼다.

한층 간절해진 마음으로 글쓰기 크루 리더인 권수호 작가님께 조언을 구했다.

그는 추상적인 글보다는 구체적인 것이 좋고 마땅히 쓸 것이 없다면 일상의 내용이 들어가도 괜찮다고 했다.

조언을 따라 추상적인 멋 부림은 버리고 솔직한 마음을 담담하게 쓰고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 후 이틀 동안 브런치에 열 번도 넘게 들락날락하며 결과가 나왔는지 가슴 졸이며 확인했다.


그리고,

합격 알림이 왔다.


알람을 보자마자 심장이 제멋대로 세동 했다. 

기쁨의 기운이 사방으로 튀어 어제까지 어둡고 음침하기만 하던 세상이 갑자기 환하게 밝혀진 것만 같았다.


나는 안다.


이것이 비록 대단한 성취는 아닐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부딪쳐 해낸 의미 있는 결과임을.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의 대사가 떠오른다.


Not everyone can become a great artist,

but a great artist can come from anywhere.

모든 사람이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훌륭한 예술가는 어디서든지 나올 수 있어.

 

그렇다면 이제야 늦깎이로 시작하는 내가 언젠가 진정한 작가가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꿈은 크고 몸은 작고 마음은 무한하다.


그리고 지금은 꿈의 초석을 다질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 바다의 쓰레기를 줍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