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희정 Jun 22. 2022

마음 바다의 쓰레기를 줍는다

상징과맥락 작가님 글을 보고..

브런치 작가님들 글을 읽다가 작가 한 분이 소개한 황병승 시인의 시 '눈보라 속을 날아서(상)'의 일부를 보았다. 읽었다가 아닌 보았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 시가 마치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감성이 여전히 촉촉했던 어린 시절에는 그런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글을 꽤 좋아했었는데 그 이유는 글도 그림처럼 그릴 수 있는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이해하기 쉽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깔끔한 글을 좋아한다. 그런 글들은 몸에 좋은 음식과 같이 소화가 잘되고 우리의 영혼에 건강한 피와 살이 된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몸의 형체가 결정 나듯이 밝고 긍정적인 건실한 글들은 내 영혼의 형체를 예쁜 그림 퍼즐을 완성시키듯 구성시킨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종종 불안정한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와 그 평화의 균형을 깨트린다.


마음이 불안할 때 술을 찾아 일시적인 위로를 삼는 것처럼, 그럴 때는 그런 추상적인 글을 보고 그 속에 잠시 취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로부터 찔린 마음의 상처로 하루 종일 쓰라려 어떤 것들로도 위로받지 못하는 날, 내 하찮고 초라한 존재의 인식으로 끊임없이 작아지다 먼지가 되어 땅으로 꺼질 것 같은 날, 이유모를 불안과 방황에 시달려 어디론가 숨고만 싶어지는 그런 날엔 바다의 환경 쓰레기처럼 둥둥 떠다니며 내 마음을 오염시키는 형상화되지 못한 단어들이 난해한 글에 의해 뜰채에 걸러지듯 올라온다. 이해하는 것이 아닌 보고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그런 글들은 처음 작가의 마음을 따라 손을 거쳐 흘러나오지만 보는 사람의 느낌이나 상황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눈물샘이 찢어져 줄줄 흘러내리게 만들거나, 해리포터의 지팡이로 가슴을 휘휘 저어 감정이 핑핑 돌게 하기도 한다. 글에 취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오직 눈앞에서 활개 치는 활자들이 나를 설명한다.


그렇게 글에 녹아든 날에는 작은 자극에도 아주 민감해진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거리를 거닐며 보이는 모든 글자들이 줌-업되어 눈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환영, 그랜드 오픈, 스타, 노래 광장, 테라피, 이모, 휘발유, 에이스.. 길가 간판들이 보여주는 무작위 글자들이 시적 은유가 되어 다가온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주인공이 된 양 글자를 이리저리 조합해보고 다시 나열해본다.


"드디어 그랜드 오픈. 막이 오르고 노래하는 광장 앞 무대에 우리 이모처럼 생긴 푸짐한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에이스. 노래를 부르는 순간 빛의 환영이 보인다. 불길에 휘발유를 붓듯이 열정이 활활 타오른다. 스타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글자와 문장들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창작과 배설은 종이의 양면이다.

자기 연민과 자기혐오가 동시에 나타난다. 갑자기 글자를 그리고 싶어 진다는 심상이 폭발한다. 이야기를 짓는 것이 아니라 마크 로스코 그림 노랑-오렌지-노랑 색채처럼 글을 강렬하게 퍼트리고 싶어 진다. 아무래도 시적 상상에 너무 취한 듯하다.


지나친 음주가 건강에 해로운 것처럼, 이런 류의 글은 적당히 보고 마셔야 한다. 순간의 유희로 즐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음한 다음날처럼 여운이 오래 남는다. 몽환적인 기분이 좋아 계속 그런 글만 추구하다가는 중독이 되어 세상과 나를 똑바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추구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기만의 창조를 추구하다가 예술의 탈을 쓴 광기에 영혼이 함락되어 쓸쓸히 생을 마감하지 않았던가.

생각 쓰레기가 썩어 악취를 풍기기 전 한 번씩 건져내어 바다를 정화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음식도 술도, 글도 적당히 섞어 마시는 것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길이라고 결론지어본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쓰레기가 쓸모 있는 재활용품이 되길 바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