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타 부서 직원 한 명이 병원을 그만두었다. 그 부서에 갈 때마다 생글생글 웃으며 다정한 말을 건네준 이었기에 그녀의 빈자리가 유독 아쉬웠다. 병원만큼 살가운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 없지만, 아파서 화가 난 듯 기다리는 환자들을 종일 상대하다 보면 다정함을 계속 유지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친절은 환자의 시간을 아껴주는 일이다. 부득이 환자가 오래 기다려야 할 때는 예상 대기시간을 알려주고 대안을 제시해 주는 직원이 제일 눈치 있다고 평가받는다.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윽박지르는 환자를 만나면 나는 아직도 맥박이 빨라지고, 손바닥에 진땀이 맺힌다. 동시에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진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직원이라면 그런 일을 감내하기가 더 어렵다. 환자에게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다 뒤돌아 눈물을 글썽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떤 직원은 그런 과정에서 같이 언성을 높이며 대처하다가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만둔 그녀는 성난 환자를 대할 때도 침착하고 부드럽게 달랬다. 그런 대응 방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오래된 경력자에게도 절대 쉽지 않다. 그녀의 미소가 유독 빛나 보였던 까닭은 사람을 상대하는 숙련도에 있었다. 듣자 하니 그녀의 상사는 생각이 달랐다. 평소 두 사람은 마찰이 심했다. 말할 것도 없이, 사직서의 결정적인 원인은 부서 내부 갈등에 있었을 테다.
나도 종일 머릴 맞대고 일하는 직원 중에 마음의 거리가 있는 사람이 있다. 이견 조율이 안 되어서 종종 화가 날 때도 많다. 때로는 쓴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한 소리를 들은 직원은 나를 좋아할 리 없다.
한 사람을 두고 나와 그녀 부서의 상사가 평가를 달리했던 것처럼, 사람마다 상대에 대한 인식은 다르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인간은 타인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잘 찾는다. 나도 그만둔 이와 같은 부서에서 일했더라면 항상 그녀를 좋아할 순 없었으리라. 마찬가지로 나와 맞지 않는 직원도 다른 사람과는 얼마든지 친하게 지낼 수 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어떤 이에게는 좋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하는 현상은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진리이다.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은 되레 마음을 편하게 한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살까 봐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게 만드는 건 사람 자체보다 상황이 원인일 확률이 높다.
특히 직장 내에서 자신과 맞고 안 맞고의 문제보다 중요한 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성숙도이다. 자신과 성향이 다르더라도 맡은 바 업무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배척할 필요가 없다. 업무 중에 부딪히는 동료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하기보다 일단 함구하고 화를 가라앉히며 생각을 정리하는 게 성숙한 어른의 자세이다. 때론 적당히 덮어버리고 내 할 일을 하면 그만이다.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면, 사람이 아닌 사람이 처한 상황 그대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여야겠다. 초점을 상황에 맞춘다면, 직장 내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도 조금은 덜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이것이 오늘도 내가 우리로 들어가는 마음가짐이다.
⭕라라크루 [금요문장: 금요일의 문장 공부]_2024.03.08.
오늘의 문장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 모습만 보이게 되는 상대가 있는가 하면 허술하고 실수투성이의 모습만 꺼내게 되는 상대가 있다. 사랑하기에 좋은 사람은, 이 사람과 함께할 때 나의 가장 성숙하고 괜찮은 모습이 나오는 사람이다. 나는 어차피 누구에게도 완벽하거나 객관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다. 대상과 상황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