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 삼일절 특집
안중근은 왼팔로 총신을 받치고 오른손 검지를 방아쇠울 안에 넣었다. 엎드린 자리가 편안했다. 안중근은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를 방아쇠에 걸었다. 안중근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반을 내쉰 다음 숨을 멈추었다. 바위는 보이지 않고 노루만 보였다. 조준선 끝에서 총구는 노루의 몸통에 닿아 있었다.
오른손 검지 둘째 마디는 안중근의 몸통에서 분리된 것처럼, 직후방으로 스스로 움직이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총의 반동이 오른쪽 어깨를 때렸다. 총의 반동에 어깨로 맞서지 않고, 몸안으로 받아들여서 삭여내야 한다는 것을 안중근은 소싯적부터 알고 있었다.
김훈, <하얼빈>
오늘은 '장면을 묘사하는 연습'을 해 봅니다.
< 나의 묘사>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치는 그녀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으로 노트를 내려다보더니 오른손에 연필을 꼭 쥐고 천천히 쓰기 시작했다. 살짝 오므린 입술이 앙증맞고 귀여워 보였지만, 나는 재빨리 얼굴에서 미소를 거두었다. 소리를 내서 몰두하는 순간을 방해하는 건 관찰자가 지녀야 할 기본자세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을 촬영했던 감독이었더라면 정글을 관찰할 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을 테다. 지금 이곳은 밀림과 다름이 없다. 수풀에 숨어 들키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나는 그녀의 등 뒤에서 사선 방향으로 2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극한의 환경에서 촬영하는 사람의 처지에 감정이입이 되자, 자동문이 열리듯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서 보았던 잘생긴 원주민이 떠올랐다. 그는 지금도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내 빈곤한 집중력이 잠시 아마존의 꽃미남에게 다녀오는 동안 그녀는 입술을 벌려 손에 들고 있던 연필 끝을 살짝 깨물었다. 사탕을 먹듯 연필을 빨았다가 바로 뱉어냈다.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지 그녀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 모습에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집중하자. 이 역사적인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곧 사각사각 쓰는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누가 훔쳐보고 있는지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열중하는 그녀의 모습이 사뭇 엄숙해 보이기까지 한다. 감동의 물결이 금방이라도 내 눈시울을 덮을 기세였다. 언제 마지막으로 빗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는 헝클어진 머리칼과 종일 입고 있던 핑크빛 내복도 지금 그녀의 성스러운 아우라를 방해할 순 없다.
그윽한 눈길을 느낀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획 돌렸다. 눈을 내게 마주치고 화난 사람처럼 소리쳤다.
“아, 왜! 삼일절은 우리나라가 독립한 날인데 학습지 숙제가 있냐고! 이런 날은 당연히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것은 단 20분간의 몰입이었다.
그녀의 한계는 명백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미래의 인재 가능성을 엿보았다.
딸은 분명 6학년 생활도 잘 해내리라.
다음 주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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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크루 [금요문장: 금요일의 문장 공부]_2024.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