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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Feb 17. 2024

장래 희망은 한창 진행 중

1. 오늘의 문장      


당신이 선택한 이미지를 인정받으려는 노력은 승산 없는 싸움이다. 진짜 당신은 에고가 대외적으로 과시하려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진짜 당신인 것처럼 믿게 하려는 바람에서 더 나은 이미지를 끊임없이 모색할 수밖에 없으니 당신의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출처. <행복을 풀다> – 모 가댓 지음/강주헌 옮김

     

2. 문장에서 시작된 내 삶의 이야기     


초등학교(사실 내겐 국민학교였다)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등교했더니 교실 뒤쪽 벽 게시판에 커다란 종이가 붙어있었다. 종이 맨 부분에는 ‘장래 희망’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제목 아래로는 나를 포함한 우리 반 아이들 모두의 이름이 적힌 동그라미와 빈칸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장래에 무얼 하고 싶은지 적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우르르 교실 뒤쪽으로 달려갔다. 많은 아이가 서슴없이 자신의 희망을 적었다. 개중에는 한참 생각하고 신중하게 적는 친구도 보였다. 나는 게시판에서 살짝 떨어져 모든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때까지 커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중요한 시험에서 커닝하고 싶은 심경으로 다른 아이들의 희망을 훔쳐보았다.      


‘선생님, 의사, 축구선수, 판사, 경찰….’     


누가 봐도 바람직한 직업들이 힘주어 꾹꾹 눌러쓴 아이들의 명확한 글씨체만큼 돋보였다. 결국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장래 희망을 적지 못했다. 나처럼 못 적은 친구들에게는 내일까지 생각해 오라는 숙제가 내려졌다.      


하굣길,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와 학교 운동장 철봉에 매달리며 놀았다. 잠시 후 우리는 내일 게시판에 뭐라고 쓸지를 얘기했다. (친구 역시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친구는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했다. 잠깐 침묵이 지나갔다. 친구가 얼굴을 환하게 펴고 확신에 찬 어투로 외쳤다.

“난…. 빵이 좋아. 맨날 빵을 먹을 수 있게 빵집을 차리면 좋겠어!”     


아. 좋아하는 일이란 저런 거구나. 난 뭘 좋아하지? 친구를 따라서 생각을 떠올려보려고 머리를 쥐어짰다. 하면 기분 좋은 일을 생각하니 머지않아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온종일 만화만 보고 살고 싶어! 만홧가게를 해야겠어!”     


기분이 들뜨자 둘 다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우리는 무슨 빵을 만들지, 어떤 만화를 가게에 놓을지 구체적인 계획을 짰다. 빵집과 만홧가게는 서로 붙어있을 예정이었다. 사람들이 만화를 보다가 입이 심심하면 빵도 사 먹을 것이라는 나름의 전략이었다. 마치 스케치에 색이 칠해지듯 미래가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장밋빛 미래보다 아름다운 붉은 노을이 하늘에서 우리를 감싸안았다.     


다음날, 다시 학교 게시판 앞에 섰다. 한 손에 칼을 찬 장수처럼 비장한 기운이 연필을 꼭 쥔 오른손에서 흘러나왔다. 멋진 직업들 사이에 놓일 내 장래 희망을 또박또박 적었다.      


‘간 호 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흠잡을 데 없는 직업. 그것이 나의 공식적인 선택이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다. 나는 놀림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착하고 바른 아이로 인정받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정말 간호사가 된 지금, 가끔 과거 그날이 떠오른다. 공식적인 꿈은 이루어졌지만,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 가진 행복은 가지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직업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는 타인을 의식해서 만든 행복이 아닌 진짜 원하는 일을 하며 얻는 기쁨도 느끼고 싶다. 글을 쓰는 순간처럼 나만의 행복을 많이 만들고자 한다.     



PS. 빵집을 하겠다고 말했던 동창은 그날 게시판에 뭐라고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녀는 지금 서울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라라크루 [금요문장: 금요일의 문장 공부]_2024.2.16.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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