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무언가가 웃기는지 알고 싶다면 그것이 우리를 웃게 만드는지 확인하면 된다. 어떤 그림이 아름다운지 알고 싶다면 그림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면 된다. 웃음만큼 확실하지만 대부분은 좀 더 조용하고 주춤거리며 나오는 반응일 것이다.
출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지음
2. 나의 문장
그림 속 여인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 짙은 노란색 모자를 쓴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 오른손으로 찻잔 손잡이를 들고 있다. 검은색 장갑을 낀 왼손은 손등을 위로한 채 테이블에 힘없이 내려놓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초록색 코트의 소매 끝은 접혀 있다. 접히면서 드러난 소매의 안감은 코트 깃과 같은 검은색에 가까운 고동색이다. 접힌 소매와 장갑 낀 왼손의 색깔이 아주 미묘한 차이만 있어 손이 마치 소매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맞은편에는 빈 의자만이 덩그러니 앉아 있다.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낡은 청동색의 라디에이터만이 왼쪽 구석을 채우고 있다. 방열판에 뚫려 있는 구멍에서 금방이라도 윙윙거리는 앓는 소리가 나올 것만 같다. 여자는 입술을 꾹 다물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찻잔을 내려다보는 건지. 아니면 테이블을 보는 건지 표정을 읽기가 어렵다. 그녀의 뒤로 창가에 놓여있는 다홍색의 꽃이 보인다. 꽤 화려한 색이라서 꽃이라 믿는데 사실 진짜 꽃인지 조화인지 확실치 않다. 모양이 색깔만큼 선명하지 않아 꽃이 아닌 다른 물건일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시선을 훔치는 다홍색은 그녀가 입고 있는 코트의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진한 붉은빛의 원피스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나는 이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제일 먼저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 후, 다시 그녀의 얼굴로 돌아갔다. 모자로 그늘진 그녀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지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슬픔이 번지던 그림. 에드워드 호퍼의 <자동판매기(Automat)>. 내가 한때 아주 좋아했던 그림이다.
오랜만에 미술책을 뒤적거리다가 호퍼의 그림을 발견했다. 여전히 그림 속에 갇혀 있는 여인을 다시 만났다. 오늘의 그녀는 좀 변해 보였다. 그녀는 슬프다기보다 속상해 보였다. 연인과 싸우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힘든 상황 앞에 무기력한 자신에게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어떤 그림을 보고 공감하는 것은 그림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의 일정 부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림 속 풍경은 한결같지만, 오늘의 나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