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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Sep 02. 2024

나는 밀가루 반죽


⭕라라크루 [금요문장: 금요일의 문장 공부] 2024.08.30.     


1. 오늘의 문장      


정면만으로 그 사람의 얼굴을 완전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들의 옆얼굴을 훔쳐보는 버릇이 생겼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거나 멍하니 생각에 잠긴 옆얼굴을 보고 있자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이 사람,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수없이 봐온 사람임에도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옆얼굴엔 그(그녀)의 이면이랄까 본모습이랄까, 전혀 다른 얼굴이 있다. 정면에선 보이지 않던 슬픔이나 매력, 혹은 말 못 할 비밀. 그에게도 내가 모르는 모습이 많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고 놀란다. 그런 이유로, 한쪽 면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될 일이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볼 때도.  

출처. <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 하완 지음.


2. 나의 문장     



1년 넘게 이어온 새벽 기상을 멈춘 지 6개월이 지났다. 아이가 자랄수록 자는 시간이 늦어졌다. 너무 작아서 조심스레 안고 다니던 아기였는데, 이제는 무릎에 앉히면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크고 무거워졌다. 아무리 일찍 자자고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아이도 아이 나름의 삶이 형성되고 있었기에. 문제는 그런 아이를 따라 내 취침 시간도 점점 늦어졌다는 데에 있다. 수면시간이 줄어들자 몸이 피로해지고 자꾸 아팠다. 꾸준히 운동을 해도 살이 쪘다. 결국 내 몸을 위한 결단을 내렸다. 새벽 기상의 중단에는 이런 자기 합리화가 있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니 세상 편했다. 강박처럼 붙잡고 있던 책 읽기도 글쓰기도 내려놓았다. 기분이 처지는 날 문득 달콤한 카페 모카가 당길 때처럼 마음이 내킬 때만 책을 씹고 글을 뱉었다. 생각 공장의 가동을 잠정 중단했다. 알록달록 움직였던 세상이 무채색으로 변했다. 관찰자에서, 무관심자로 돌아갔다.      


돌이켜보면 원래부터 새벽형 인간이 아니었다. 글 쓰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동안 흉내 낸 글쟁이의 삶이 재밌기는 했지만, 동시에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이 종종 올라왔던 것도 사실이다. 2년 동안 무어라도 써보겠다고 버틴 결과가 겨우 이건가. 부정적인 생각은 죽여도 죽여도 다시 일어나는 좀비처럼 썩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새장으로 들어가는 새가 되어 안락함을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못난 속내를 들키기도 싫었다. 햇살을 향해 걸어가다 몸을 틀어 내 그림자를 보았다. 시커먼 멍이 온몸을 덮고 있는 녀석은 나의 이면이었다. 그런 녀석을 보니 애처롭다가도 울화가 치밀었다.     


멍 자국도 나의 모습이다.     


나는 강하고 약하다. 부지런하고 게으르다. 이성적이고 감정적이다.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고 싶은 일 앞에서 무한 망설이기도 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이 싫어 혼자만의 그늘에 들어간다. 그 모든 내면은 동전의 양면처럼 앞뒤로 나뉘어있지 않고 밀가루 반죽처럼 막무가내로 섞여 있다.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다.     


그러니 그래도 괜찮다고. 이상한 면도 부족한 면도 나라고.

그 모든 마음 재지 말고 끌어안고 살자.     


아이에게 이제 엄마는 먼저 자겠다고 말했다.

새벽 기상을, 다시 시작했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금요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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