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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Jun 21. 2024

다이어트를 위한 변명

갑분글감. 다이어트.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스무 살 아니 서른 살까지도 살쪄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보기에 호리호리한 몸매였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너무 마르지도 찌지도 않는 중간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평범한 몸을 굳이 자랑하는 이유는 그때는 많이 먹어도 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믿었다)이었기 때문이다. 피자, 햄버거, 치킨, 콜라 등 고열량 음식을 좋아했고 자주 먹었다. 소화능력도 타고난 편이어서 함께 다니던 친구 중에 가장 많이 먹는 군에 속했다.      


신비한 능력은 임신한 이후부터 완전히 사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출산만 하면 예전 체중으로 금방 돌아갈 수 있으리라 찰떡같이 믿었다. 그것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세상 모든 여성의 헛된 희망이었다. 열 달이 지나 아기가 세상에 나와 빛을 보게 되고 또 다른 열 달이 더 지나도록 체중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당시 찍은 몇 장 되지 않는 내 사진을 보면 꽉 끼는 옷을 입고 보름달처럼 부은 얼굴로 아이와 활짝 웃고 있는 아줌마가 서 있다. 사랑스러운 아이와의 추억이 담긴 순간만 아니었다면 당장 삭제하고 싶은 사진들이다.      


더 큰 문제는 실제적인 몸의 이상이었다. 검진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보다 높았으며, 지방간 소견이 나왔다. 체중증가로 수술한 무릎에도 무리가 많이 온 상태였다. 늘 피곤하고 툭하면 짜증이 났다. 더는 그런 상태를 견딜 수 없어 없는 시간까지 짜내서 운동을 시작했다. 노력은 정직했다. 한동안은 꽤 성공했다.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가진 못했어도 검진 결과를 정상 수치로 돌리기에는 충분했다. 이제 유지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디 사람의 일이 그러한가. 글을 쓰기 시작하고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체중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급기야 얼마 전,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스테로이드와 소염진통제를 한 달 이상 복용하며 발생한 부작용이 원인이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대부분의 일에 체중까지 보태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결심한 게 지난주 토요일이다. 운동은 계속하고 있었기에 좀 더 강력하고도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식사량을 줄이기로 했다. 당장 과자나 음료수 같은 간식도 끊었다. 저녁 대신 요거트에 견과류를 넣어서 먹기를 5일째. 일주일 사이 1킬로그램이 줄었다. 매주 1킬로그램씩 줄 수는 없겠지만, 출발이 좋다.      


다이어트는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아무리 굳게 먹어도 눈앞에 치킨 다리 한 조각에도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이어트는 동시에 자신과의 격렬한 갈등이다. 다이어트란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많은 논쟁이 마음 안에서 벌어진다.     


‘날씬해지고 싶어? 왜? 건강해지려고 그러지. 건강을 위해서라면 적당히 먹으면서 해도 되잖아. 이왕이면 건강도 잡고 몸도 예뻐지면 좋잖아. 누구를 위해서? 물론 나를 위해서지. 나를 위해서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넌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는 거잖아. 자신의 인생을 남 신경을 쓰는 데 허비할 거야? 그냥 마음 편하게 살자. 넌 살을 빼지 않아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라고.’     

얼핏 들으면 꽤 합리적이고 설득력까지 갖춘 말이다. 이런 자아의 유혹은 마치 초코브라우니와 같다. 혀끝에 녹아드는 달콤함에 그 순간에는 기분이 좋아지지만, 결국 내게 이로운 것은 없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다이어트와 비슷한 일이 너무나 많다. 미래를 위해 지금 돈을 아끼고 모은다든지. 당장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전에 해보지 않던 일에 도전해 본다든지. 이를테면 보컬 레슨을 받는다던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이올린 교습소를 찾아가는 행동 같은 엉뚱한 도전 말이다. 그 모든 일은 삶에 안주하는 자신을 일으키는 변화다. 변화를 시작하면 마음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빨리 잘하고 싶어 조급해지고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기에 실패하기 전에 그만두고 싶어진다. 이 모든 마음의 갈등을 이기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마음을 잠시 떼어두고 의지와 몸만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습관이라는 새 식구가 생긴다. 습관이 자리를 제대로 잡을수록 마음도 안정을 되찾는다. 시간이 흘러 작은 성취들이 하나둘 태어나면 그것은 삶에 대한 열정으로 자라게 된다. 안주하는 삶을 버리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드는 일은 이롭다. 이로움을 발전시켜 타인에게 나눌 수 있다면 세상의 이로움에도 일조할 수 있다.      


갑자기 나의 다이어트에 사뭇 비장한 동기가 세워졌다. 그러니까 머뭇거리지 말고 그냥 해보자.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세상의, 이로움을 위해서.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갑분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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