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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Jun 25. 2024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머물고 싶은 곳

라라크루 수요질문. 인생의 마지막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인생의 마지막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나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다. 겨우 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가족과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장소는 우리 집이다. 마지막 순간을 보내기에 집보다 완벽한 곳은 없다. 그 어디보다 익숙하고 마음에 안정을 주는 곳이니까. 딸이 곁에서 내 손을 잡고 있고 남편은 그 뒤에 서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나는 곧 자리에 있는 이들을 차례로 부르고 내 삶에 소중한 인연이 되어주어서 감사했다고 인사한다. 가족들에게는 이 세상 무엇보다 사랑했노라고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별 볼 일 없는 삶을 이어갈 의미를 알지 못했을 테다. 죽음을 목전에 앞두니 지난 일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도 먼지처럼 사라진다. 삶이 이렇게 허망할 줄이야. 나는 차라리 좋았던 일을 떠올리며 이 순간을 흘려버리자고 생각한다. 행복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자 곧 마음이 햇빛 좋은 날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처럼 편안해진다. 모두의 슬픔과 축복 속에서 내 영혼은 조용히 눈을 감는다.  

   

누구나 안락하고 품격 있는 죽음을 꿈꾼다.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처럼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두 청년이 소원대로 드넓은 바다를 눈앞에서 감상하며 맞는 그런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죽음 말이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에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꿈은 더 간절하고 애달플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실제는 명백히 다르다. 사람들은 대부분 큰 사고를 겪거나 말기 암처럼 회복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이 세상을 떠난다. 우리의 마지막 장소가 병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고로 구급차에 실려 오는 사람은 응급실로 들어오고,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머무는 장소는 폐쇄병동인 중환자실이다. 두 장소 모두 의료진의 허가 없이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 병원 침대 매트리스는 감염예방을 위해 알코올로 닦기 좋은 인조가죽으로 싸여있다. 얼음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매트리스에 얇디얇은 하얀 시트가 피부처럼 감싸고 있을 뿐이다. 축 늘어진 환자 몸을 덮고 있는 이불 역시 푹신한 담요가 아닌 새하얀 시트인 경우가 많다.


 환자의 손가락 끝으로 연결된 산소포화도 측정기는 환자의 호흡과 심장 박동을 24시간 감시한다. 의료진은 언제 정확히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환자의 혈관에 여러 종류의 수액을 연결해 놓았다. 죽음이 근처에 왔다고 여겨지는 환자가 있다면 의사는 가족을 호출한다. 가족은 초조한 마음으로 보호자 대기실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드디어 의사의 허락이 떨어지면 굳게 닫혔던 자동문이 열린다. 가족은 그제야 환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침대로 달려간다.


환자는 물론 의식이 없다. 그들은 오열하며 이미 차가워진 환자의 몸을 껴안고 꽉 움켜쥔다. 환자가 들을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렇게 고민하는 시간조차 낭비처럼 여겨져 죄책감이 몰려든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들은 서둘러 환자의 귓가에 대고 사랑했노라고 속삭인다. 이 모든 광경에 평온과 엄숙함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처절하고 가엽기까지 한 순간. 그것이 우리가 겪는 죽음의 현실이다.


내 생에 마지막 순간을 상상할 때마다 우울한 기분이 올라온다. 소망과 예견된 현실과의 간극을 메울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지점에 이르면 결론은 늘 하나다. 어차피 마지막 순간에 내가 원하는 곳에 있을 수 없으니 그 시간이 오기 전에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경험하며 살겠다고. 마침내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면 그저 인생을 사랑했고, 나를 사랑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걸 되새기며 눈을 감고 싶다. 안락한 곳에서 편안한 죽음을 실현할 수 없더라도, 사랑에 머물다 가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수요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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