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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Dec 08. 2024

삶의 가지치기

1. 오늘의 문장


이름과 가죽을 남기는 일 따위가 죽음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김완, 죽은자의 집 청소 80쪽)


2. 나의 문장 나의 삶


내가 일하는 검진센터에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가 도래했다. 요즘 집에 오면 자고 눈 뜨면 일하러 가는 일과만을 반복하고 있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은 꾸준히 하려고 매일 헬스장을 가지만, 의욕 없이 하는 운동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그래도 아예 하지 않으면 몸이 더 나빠질까 봐 건강하지만 맛없는 음식을 먹듯이 퇴근 후 꾸역꾸역 운동한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간단히 배를 채우고 이불속으로 직행한다. 잠으로 가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겨울이라 밤이 길어진 탓일까. 자도 자도 졸음이 쏟아진다. 먹고 자고 일하는 분주한 반복에 나른하고 보드라운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다.    

  

잠이 많아진 다른 이유는 물론 스트레스다. 일하는 내내 언제 어디에서 사고가 생기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털을 잔뜩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몸에 날을 세우며 지낸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말없이 자리를 뜬 직원에게 폭발하고야 말았다. 마른 장작 같은 이성이 순간 분노로 바싹 타들어 갔다.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직원에게 한소리를 했다. 살얼음판 같던 오전 일을 마치자 조금 정신을 차렸다. 아까 그 직원을 다시 불러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이미 내뱉은 말이 그의 가슴에서 지워질 리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과를 한 건 어쩌면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무게가 유독 버거운 나날을 보낼 때는 그 무엇에도 감흥이 없다. 그저 모든 게 귀찮고 이 상황을 하루빨리 벗어나고만 싶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다르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근심만 쌓다 보면 곧 시무룩해진다. 그럴 때는 생각에서도 후다닥 도피를 감행한다. 시간이 흘러 감정의 파도가 잠잠해지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 믿고 자신을 재무장한다. 마음속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리셋하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방법은 때때로 매우 효과적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런 마음으로 출근하는 길에는 뜻하지 않은 배움을 얻기도 한다. 이번 주 출근길이 바로 그랬다.      


그날은 삽시간에 내린 폭설로 걸어서 출근했다. 회색빛 도시가 온통 하얗게 변했다. 하얀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전시관의 작품을 볼 때처럼 우선 나의 안전이 보장된 상황에서 나와 세상 사이의 거리가 필요하다. 설경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 걷는 내내 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넘어질 뻔했다. 하얀 눈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질하였다. 그래도 일터로 향하는 내게 눈으로 가득 찬 대기는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일시적인 힘겨움일 뿐이었다.      


나무는 그렇지 못했다. 밤새 내린 눈을 온몸으로 막던 그들은 그 무게를 버티느라 허리가 휘었다. 일부는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소리 없는 죽음의 압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길가 군데군데 부러진 나무 시신들이 보였다. 수년의 비바람을 견딘 그들의 보잘것없는 최후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길가에 쓰러진 나뭇가지 하나 밟고 싶지 않아 천천히 그 주위를 돌아서 갔다. 몇 걸음 못가 뒤돌았다. 다시 쓰러진 나무 앞으로 갔다. 생의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던 눈과 어느새 하나가 된 나뭇가지를 물끄러미 내려보았다. 나무의 잔인했던 밤을 떠올렸다. 이제 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무거운 마음은 금세 체념이 되었다. 애써 외면하며 가던 길을 다시 나섰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걸어서 출근했다. 여전히 눈이 제대로 녹지 않았기에 걸어가는 방법이 그나마 제일 빨랐다. 그사이 길바닥에 쓰러졌던 나무들은 사라졌다. 적어도 며칠은 더 그 광경을 보며 다닐 줄 알았는데. 단 이틀 만에 나무들이 모두 치워졌다. 금방 정리된 거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악천후에도 누군가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으리라. 놀라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이 되자 멀쩡히 살아남은 나무들이 일제히 가지치기가 되어 있었다. 잎사귀가 떨어져도 사방으로 잔가지를 뻗으며 겨울 햇살을 갈망하던 나무였는데. 이제는 굵은 가지들까지 다 베어져 밀로의 비너스처럼 불완전한 형상이 되었다. 잘려 나간 가지들은 길 한쪽에 쌓여 있었다.    

  

예전에 가지치기한 나무를 보면 마음 한쪽이 저렸다. 단지 식당 간판이나 도로 교통표지판, 신호등을 가린다는 이유로 가지를 베어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 길가의 가로수들은 뿌리가 땅 깊이 박히지 않았기에 자칫 폭설이나 강풍에 쓰러질 수도 있다. 무조건 나무를 계속 하늘로 뻗어나가게 내버려두면 아무리 겉으로 튼튼해 보이는 나무일지라도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 모른다. 가지를 베는 수형조절은 결국 나무의 생장을 위한 불가피한 길이었다.

      

나 역시 생명을 가졌기에 죽기 전까지 삶의 고통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벗어날 수 없다면 눈처럼 쌓이는 고통 역시 단지 내 삶의 가지치기를 위한 과정이라 여겨야겠다. 자잘한 삶에 대한 불안과 근심, 더 잘살고 싶다는 욕심의 가지를 계속 쳐내며 내면의 형상을 끊임없이 조절해야한다. 그래야 공허한 삶을 의미로 채울 테니까.


삶의 성공만을 바라기보다 삶 자체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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