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희정 Sep 16. 2022

화창한 오후 공원에서 인생의 개척자를 만나다.

글 수정을 하다가 잘못하여 글 전체가 삭제되었습니다.  잠시 초사이어인이 되어 기억을 죄다 끌어모아 다시 썼습니다.  삭제된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신 분들과 읽지 못한 댓글을 써주신 작가님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ㅜ


화창한 평일 오후.

나는 점심을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직장 근처에 있는 공원에 왔다. 이렇게 햇살이 따하게 비칠 때면 인공적인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종일 일하는 게 문득 서글퍼진. 그럴 때면 어김없이 주머니에 핸드폰과 이어폰을 쑤셔 넣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 공원으로 달려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직 점심시간이 끝나려면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공원에 있는 그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은 다음 핸드폰과 연결한 후 느긋하게 음악을 들으며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 사이 앙증맞은 구름들이 둥둥 떠다니듯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정신없이 일할 때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시간에 쫓기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숨을 고르며 글을 쓸 때 구분선이나 여백을 만들 듯 한숨을 돌려야 한다. 잔나비의 ‘가을밤에 든 생각’이라는 노래가 끝나도록 나는 계속 하늘을 보며 지친 마음을 달랬다.


노래가 끝나 다음 노래를 고르기 위해 핸드폰을 집어 들다가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공원 바닥에 깔린 보도블록 위로 개미들이 분주히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개미들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한 개미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눈으로 그 녀석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개미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더듬이를 열심히 움직여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쭈욱 가다 하나의 돌 블록 끝에 다다르자 잠시 그대로 멈췄다. 다음 돌 블록과의 거리는 인간인 내게는 새끼손가락의 반도 안 되는 작은 홈이었지만 그 녀석에게는 거대한 절벽처럼 보일 것 같았다. 나는 절벽을 만난 개미가 당연히 다시 몸을 뒤로 돌리거나 아니면 절벽을 따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개미는 그대로 절벽의 끝, 즉 홈 아래로 추락하듯 재빨리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 아무렇지 않게 다음 블록으로 이동했다. 개미에게 있어 길의 끝이란 그 어떤 의미 없었다. 누군가가 만든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본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움직이면 그게 그 녀석의 길일 뿐이었다.


나는 순간 내가 얼마나 편견에 쌓인 생각을 했었는지 알아차렸다.


인간은 사회가 좋다고 정의한 길을 밟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고 그 길을 걷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영어와 수학은 싫어도 열심히 해야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며, 능력 있는 배우자를 만나야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태어난 우리 대부분은 그런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실제로도 그런 과정을 밟으면 어느 정도 지위와 안정을 보장해 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세상은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끌고 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나를 포함한 나머지 대다수의 삶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들은 비단길을 걷지 않고 숲길, 흙길, 자갈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 길들이 비단길만큼의 풍요를 보장해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매한 길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게다가 살다 보면 설령 비단길을 걷던 사람일지라도 갑자기 바뀐 상황이나 예기치 않은 요인에 의해 한 순간에 그 길에서 옆으로 빠질 수도 있다. 갑자기 부모님의 사업이 망할 수도 있고,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할 수도 있으며, 직장에서 괴롭힘 피해를 입거나 일방적인 해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항상 장밋빛으로 빛날 수도 없다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책 '빨간 머리 앤'에서 주인공 앤은 자신을 키워준 매튜 아저씨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자 혼자 남은 마릴라를 위해 과감하게 레이먼드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교사가 되어 초록색 지붕 집에 남기로 결심했다, 녀는 일직선인 줄로만 알았던 인생길에서 만난 언덕을 더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한 매력적인 지지대로 여겼다.


내가 살아 숨 쉬는 한 인생의 길에서 끝 없다. 지금 막다른 골목에 있거나,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일어나서 다른 길을 찾아보자. 개미처럼 절벽을 내려갔다가 올라올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도 있다.


멍하게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어느새 개미는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위대한 개척 정신을 가진 개미가 목적지를 제대로 찾으리라 확신했다.

작가의 이전글 왜가리가 준 가르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