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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Sep 18. 2022

가오나시의 가면 뒤에는 결핍이 숨어 있었다.

모처럼 여유로운 토요일 오후, 딸과 함께 넷플릭스로 뭐 볼 게 없나 찾아보다가 면 속 목록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발견했다.


한 때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열렬한 팬이었던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이 었지만 하도 오래전이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이걸로 보는 게 어떻겠냐고 딸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함께 본 '토토로''하울의 움직이는 성'제작한 사람이 만화 역시 만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히 토토로의 단적귀여움을 기억하는 딸은 흔쾌히 좋다고 하였다.


만화의 간단한 줄거리는 랬다.

치히로라는 여자 아이가 부모와 함께 이사하는 날, 그녀의 아버지가 운전 중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기묘한 분위기의 터널 앞에 도착하게 되었고, 세 사람은 걸어서 터널 안으로 통과하여 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치히로의 부모는 아무도 없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다가 돼지로 변하게 되고 홀로 남은 치히로는 어디선가 나타난 하쿠라는 소년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그 세계 온천에서 일을 하게 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그 만화를 보면서 주목한 건 주인공인 치히로나 하쿠가 아니라 얼굴 없는 귀신, 즉 '가오나시'였다. 비 오는 날 치히로가 일을 하다가 우연히 밖을 보 가오나시가 비를 맞으며 처량하게  있었다. 그 모습을 측은히 여긴 치히로는 문을 열어둘 테니 들어와 비를 피하라고 말다. 치히로가 떠난  그는 열려있던 문을 통해 온천 안으로 들어와 치히로가 곤경에 빠졌을 때 도움을 준다. 그 후 치히로의 관심을 더 끌기 위해 약패를 잔뜩 건네주는가 하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사금을 전부 줄 테니 옆에 있어달라고 간청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돼지로 변한 부모와 몸을 다친 하쿠를 구하기 위해 마음이 급했던 치히로는 그 모든 걸 거절하고 가오나시를 떠나려 한다. 그녀를 향한 가오나시의 집착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자 치히로는 강물의 신에게 받은 경단을 그에게 먹였고, 그는 다시 잠잠하고 얌전한 상태로 돌아오게 되지만 끝내 치히로에 대한 미련 버리지 못한 채 그녀의 여정을 내내 따라다닌다.


나는 그런 가오나시의 심리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의 치히로 향한 맹목적인 집착 근본적인 원인 바로 외로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하필이면 한 사람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었음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꼈다.


한 때 나도 거대한 파도처럼 덮치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잠식 당해 많은 것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으며, 보살핌을 받고 싶었다. 가오나시처럼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미련의 끈을 끊지 못해 괴로워하며 살기도 했었다. 그런 것들에 집착을 하면 할수록 삶은  우울하고 무기력해졌다.


나는 결국 그런 허망한 감정들을 파헤쳐 그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 나섰는데 그 속에서 발견한 건 바로 결핍이었다. 내가 간절하게 소유하길 원했지 못했던 것들, 즉 나의 결핍이 그 모든 것들의 핵심이었다. 나는 내 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고 좌절하기를 반복던 것이다.


그리고 오랜 방황의 끝에 침내 나는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나의 공허함을 완벽하게 채워주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마치 내면 퍼즐판에 맞춰야 하는 부족한 조각을 부의 다른 퍼즐판의 조각들로 채우려는 부질없는 노력과 같다. 나는 엉뚱한 데서 내 결핍을 채우려고 한 것이다.


것은  맞지 않는 퍼즐을 준 상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상대를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매달리게 되어 둘 다 힘들어지는 상황까지 만들게 되었다. 악순환이 반복되 상대는 지쳐 떠나버고 나는 다시 내게 맞는 퍼즐을 줄 수 있는 상대를 언젠가는 만나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었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갈구하던 퍼즐 조각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그걸 깨달은 이후 나는 비로소 내면의 결핍을 스스로 채우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것은 동시에 모든 미련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다.


결핍은 결코 불행이 아니다. 비록 일련의 과정에서 수없이 잘못하고 상처도 많이 입었지만 내가 만약 소망하던 이상적인 삶을 살았더라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하게 내며  각성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게다가 글이라는 생전 해보지도 못한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딘가 여전히 짠한 가오나시의 무표정한 가면을 바라보며 나는 결핍은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한 하늘 기회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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