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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Sep 20. 2022

화장은 고치고 글은 계속 쓴다.

주 2회 함께 글 쓰는 모임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2주 간의 방학이 주어졌었다.

처음 모임에 들어와 A4 한 장 분량의 글을 채우는 게 참 막연했었는데 그래도 3개월 동안 꼬박꼬박 썼더니 이제는 거뜬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잘 채우게 되었다.


그런데 2주간의 방학이 끝나고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니 처 시작한 때로 회귀한 것처럼 막막하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황금보다 귀한 새벽 시간에 홀로 책상에 앉아 뭘 쓸까 멍하게 주제를 생각하다가 며칠을 그냥 흘려보냈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기 전에도 뭘 쓸까를 고민했다.


그러다가 침내 생각을 하나 끄집어내서 글을 썼다. 그건 흡사 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찾기 시간에 수풀 사이 숨어있던 보물이 적힌 종이쪽지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 같았다. 견된 쪽지 에는 단지 '노트'나 '연필'같이 소소한 선물들이 적혀있었지만 나는 그저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서 친구들에게 쪽지를 흔들며 외쳐 댔었.


그렇게 발견한 주제를  만들어 내면 아주 기분이 홀가분다. 비록 과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힘들고 괴롭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지만 글 하나를 완성시킬 때마다 줄곧 짓눌렸던 마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 중간고사를 끝낸  같은 런 느낌이랄까. 이런 성취감 물론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기 전까지의 일시적인 기분이지만 다들 이 맛에 글을 쓰 보다 하고 생각하게 다. 글쓰기 3개월 차 초보는 이렇게 조금씩  맛을 알아가고 있다.


전날 밤 글 하나를 완성하고 산뜻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곧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 돌아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속눈썹에 마스카라까지 칠하고 10분 만에 뚝딱뚝딱 능숙하게 화장을 끝냈다. 머리에 드라이를 하며 거울을 보니 오늘따라 화장이 자연스럽게 잘 된 것 같아 얼굴에 작은 행복감 졌다.


거울 너머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파릇파릇했던 대학 1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줄곧 머리는 귀밑 3cm 단발을 유지하고 옷은 늘 교복만 입고 다니다가 갑자기 두발 자유와 화장이 허용된 세계에 들어오니 한껏 꾸미고 다니고 싶었던 그 시절 말이다. 


신입생 때 나는 엿한 성인처럼 보이고 싶어 지하상가에서 산 조각 가발을 머리에 묶어 길게 늘어뜨리고,  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진하고 화려한 보라색 재킷을 입고, 글램 록을 하는 가수 마냥 2시간 가까이 공들여 화장이 아닌 분장을 하고 학교에 갔었다(그로 인해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괴짜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건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다).


그때는 단지 그렇게 꾸미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어설펐었는지, 차마 떠올리기에도 부끄러운 기억이다. 화장을 하고 몸치장하는 그 모든 행동이 처음이 미숙한  당연한 이치였는데, 나는 또래보다 더 노련하고 성숙 보이고 싶 마음에 한껏 꾸몄던 것이다. 한 마디로 어쭙잖은 를 부렸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의 화장 시간은 조금씩 짧아지더니 나중에는 30~40분 내외까지 줄어들었고, 화장 기술 많 늘어 가부키 분장을 벗어던지고 자연스러운 사람 얼굴을 갖춰 나갔다. 잔뜩 힘을 주던 어깨 스르르 꺼졌다.


지금 나의 쓰기 화장과 같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독자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멋스러운 글을 쓰고 싶었다. 멋이 들어 글 여기저기 미사여구를 잔뜩 넣어 어딘가 모르게 과장되고 부자연스러운 연출 했다. 몇 시간씩 고심해서 썼지만 3개월 전에 만족했던 조차 다시 훑어보니 고쳐야 할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래도 습관적으로 계속 쓰다 보니 일상의 실타래 속에서 의미의 실을 뽑아내는 일 약간 익숙해졌다. 엉망진창이더라도 일단 생각의 흐름대로 써보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과장의 거품은 많이 걷어내고 담담하게 썼더니 한결 읽기 편한 글이 나왔다.


내가 화장을 처음 시작한 게 20살이니 이미 화장한 지가 20년이 훌쩍 넘었. 처음 몇 시간씩 공들여 한 화장보다 지금 10분 만에 한 화장이 훨씬 보기 편하고 나은 것처럼 나의 글쓰기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나 자신을 믿고 계속 써보자.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그날까지  필요한 건 단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쓰는 거다.


화장은 고치고, 글은 계속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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