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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Sep 22. 2022

반드시 알아야 하는 선물의 조건

얼마 전 오랜만에 직장에서 전체 회식을 했다.

이번 장소는 호텔 뷔페였고 가족 중 1명 데리고 갈 수 있다고 하여 나는 딸아이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딸은 신이 나서 예쁜 드레스를 입고 가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입을 만한 드레스를 찾아 옷장을 뒤졌는데 언제 그렇게 자랐는지 작년에 입던 옷들이 하나같이 작았다. 하긴 이제 키가 내 어깨를 훌쩍 넘었는데 여태 눈치채지 못하고 살았나 보다. 용케 길이가 좀 긴 원피스 2벌을 찾아 건네주었다. 딸은 첫 번째는 색이 너무 어두워 싫고, 두 번째는 파티하고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라며 싫다고 했다.


딸을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옷 투정하는 아이를 달래는 일이 절대 만만치 않음을 잘 알 것이다. 어차피 며칠 후면 딸 생일이고 옷 사준 지도 오래되었다 싶어 이참에 예쁜 옷 한 벌 사주자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 화면을 열고 쿠팡으로 들어가 딸아이와 함께 입을만한 드레스를 검색했다.


한참을 검색하다 아기자기한 검리본들이 주렁주렁  예쁜 노란색 시폰 소재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본 딸도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러면 이걸로 하자. 엄마가 이거 미리 생일 선물로 사줄게."

딸은 고개를 얼른 끄덕이며 알았다고 했다.


이틀 뒤, 퇴근 후 집에 오니 딸이 이미 도착한 택배 포장을 뜯고 드레스를 입은 채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옷이 더러워질까 염려되어 일단 벗고 나중에 뷔페 갈 때 다시 입자고 했지만, 딸은 치맛자락을 너풀거리며 조금만 더 입고 벗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 옷을 입고 저녁을 먹다가 옷에 김치국물을 흘려 나는 부리나케 옷을 벗긴 다음 옷을 가지고 화장실로 달려가 세면대에서 김치 얼룩을 손으로 빨았다. 다행히 얼룩은 깨끗이 지워졌다. 옷을 건조대에 걸며 아이에게 옷이 더러워지면 뷔페 입고 갈 수 없으니 며칠만 참자고 했다. 아이는 입을 실쭉거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주 토요일 회식 날이 되어 무사히 그 옷을 입고 뷔페에 다녀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주에 발생했다.

"엄마 다음 주 내 생일인데 선물 뭐 줄 거야?"

"응? 너 선물 드레스로 하기로 하고 미리 받았잖아?" 

"히잉.. 그건 엄마 마음대로 사준 거잖아. 나는 받고 싶은 선물이 있었다고. 슬라임이 갖고 싶었는데..." 


그랬다. 아이는 그동안 진짜 받고 싶은 선물을 골라놨었다. 아이의 원망 섞인 말을 듣고 선물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됐다.


선물은 상대방을 기쁘게 해 주려는 목적으로 건네모든 물건을 말한다. 그런 선물의 근본적인 목적을 무시하고 철저히 내 입장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선물을 주면 상대는 내 기대와 달리 별로 기뻐하지 않을 수 있다. 나 역시 나의 편의에 따라 생일 선물을 결정했기 때문에 아이는 다른 생일 선물을 또 기대했다.


그렇다면 선물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까. 거기에는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배려란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고 보살피려는 마음으로 하는 행동인데 어떤 이는 배려를 상대가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해 행한다.


예를 들면, 힘든 일을 겪고 잠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위로하겠다며 지나치게 같이 있어 주려고 한다든지, 내가 할 수 없는 일인데도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 부탁을 받아들인다든지, 나의 경우처럼 상대의 취향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선물을 주며 상대가 좋아하리라는 착각을 하는 행동 등이 될 수 있겠다.

이렇게 상대가 아닌 내 마음을 우선하여 고려하는 행동은 어쩌면 진짜 배려가 아닌 이기적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딸을 다시 불렀다.

"저번에 드레스 선물해줄 때 네가 아무 말도 안 해서 엄마는 우리 딸이 생각해 선물이 있었는지 몰랐어.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갖고 싶어 하는 슬라임을 생일 선물로 다시 사줄게. 근데 그럼 생일 선물을 2번 받는 게 되는 거니까 대신 책 읽고 12월까지 독후감 10개쓰기 하는 거야. 어때?"

"진짜? 알았어! 그렇게 할게. 대신 독후감 쓸 때 같이 있어 줘야 해!"


다시 활짝 핀 아이의 얼굴을 보며 상대에 대한 배려를 배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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