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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Sep 30. 2022

두더지를 내리치며 교육에 대한 근심을 깨뜨리다.

지난주 토요일, 남편은 미리 계획된 약속이 있어 나가고 나와 딸은 동생네 식구들을 따라 용평리조트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당초 계획은 내 퇴근 시간인 오후 1시쯤 바로 출발해서 리조트에 도착해 그날 곤돌라를 타고 발왕산 꼭대기를 구경하고, 다음 날에는 리조트에 있는 워터파크에서 놀 예정이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제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동생이 간밤 내내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리는 증상이 지속해 새벽에 급히 응급실에 왔고, 피검사와 뇌 CT를 한 결과는 괜찮은데 의사가 이석증이 의심되니 이석증 검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지금은 그 검사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행은 아무래도 못 가겠다고 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알았다고 답하고 출근했고, 일이 거의 끝날 때쯤 제부로부터 전화를 다시 받았다.


그는 동생 컨디션이 많이 좋아져서 지금이라도 가보려고 한다며 빨리 준비하라고 했다. 동생은 이번 주 내내 여행 간다고 들떠 있던 아들을 차마 실망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다시 여행 채비를 하는 동안 동생네 식구들이 우리 집에 도착해서 우리는 함께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4시쯤 출발했다.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렸더니 저녁 7시 반쯤 리조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 리조트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도 밖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야외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어떤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무대 앞에 놓인 백여 개의 테이블에는 앉아서 음식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행사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곳 옆으로는 큰 분수대와 조명으로 만든 거대한 예쁜 성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리조트 안으로 들어와 지하층 순댓국집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식당을 나와 시계를 보니 어느새 시간은 8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지하층에는 식당뿐만 아니라 노래방과 맥주 바 그리고 오락실 등이 있었다. 딸과 조카는 오락실을 보자마자 들어가고 싶다고 졸라댔고, 밥 먹는 거 말고 특별히 한 게 없어 우리도 아쉬운 마음에 다 같이 오락실로 들어갔다. 리조트 내 있는 오락실이라 그런지 넓은 홀에는 눈을 현란하게 만드는 다양한 게임기들이 가득했다. 게임 한 판을 하려면 최소 500원부터 시작하여 3000원이 넘는 금액을 내야 했지만 여행하러 와서 이 정도의 사치는 누려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동전 교환기로 가서 지폐를 500원짜리 동전으로 바꾸고 아이들에게 각각 3,000원씩을 손에 쥐여 주었다. 딸과 조카는 신이 나서 둘러보더니 물 뿌리는 게임, 사탕 뽑기 게임, 에어 하키 게임 등을 했다. 동전이 줄어갈수록 다음 게임을 고르는 딸의 눈이 점점 신중해져 갔다. 나는 속으로 돈을 조금 더 뽑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즐거운 일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려줄 필요도 있다.


어느덧, 주먹을 꼭 쥐고 다니던 딸의 손에는 동전이 2개밖에 남지 않았다. 딸은 연신 내 손을 잡아끌고 게임 홀을 몇 바퀴나 돌며 이리저리 탐색했다. 그러다가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들이 번쩍이는 게임기들 사이에서 추억의 두더지 게임을 발견했다. 이런 곳에 생뚱맞게 두더지 게임기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데 딸이 갑자기 내 손을 당기며 말했다.


딸 : "엄마, 이거 해봐. 내가 하게 해 줄 테니까, 이걸로 나한테 받은 스트레스 풀어."


나 : "어? 나 우리 딸한테 받은 스트레스 없는데?"


딸 : "그래? 그럼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라도 풀어."


순간 딸의 말에 그동안 내 가슴을 막고 있던 정체불명의 불안감 덩어리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는 자식을 키우는 좋은 방법들이 너무나 많다. 그 모든 방법을 시도해보면 좋겠지만 그러기에 시간은 한정적이며 그 많은 좋은 교육법이 내 아이에게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말하는 '그렇다 카더라'하는 식의 교육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귀를 닫고 산다.


유치원 때에는 친하게 지내던 엄마들이 몇 명 있었고, 한 번씩 아이들과 함께 모임도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교육에 신경을 안 쓰고 산다고 해도 모임에 한 번씩 나갈 때마다 쏟아져 내리는 교육 관련 정보를 주워들으면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안 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생기곤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아는 엄마가 하나도 없어 그나마 들을 수 있던 교육 정보의 길마저 아예 막혀 버렸다. 그 어떤 정보도 안 듣고 살았더니 오히려 마음은 더 편해졌다. 그래도 기본은 시켜야지 하는 마음에 나는 혼자 인터넷과 맘 카페를 수소문해 아이 학교 바로 앞 아파트에 있는 영어와 수학 공부방을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책 읽기 교실에 보낸 게 아이가 지금까지 다니는 학원의 전부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에 책을 많이 못 읽고 자란 게 못내 아쉬워 틈날 때마다 책을 조금씩 읽게 했다. 그래도 아이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TV와 유튜브, 넷플릭스, 그리고 게임을 하면서 보낸다.


이를 두고 애한테 공부를 너무 안 시켜서 나중에 친구들에게 뒤처지면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친구도 있고, 이미 지금 정도로도 애를 힘들게 하는 거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귀가 얇아 이 말 저 말을 들을 때마다 그쪽으로 쏠리며 뜻 모를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게 몇 개 남지 않는 동전을 엄마 스트레스를 풀라고 선뜻 건네는 아이를 보며 평소 불현듯 느꼈던 초조한 감정이 괜한 기우였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부족한 엄마라 최상의 교육을 해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내 아이의 성품은 꽤 반듯하게 자라고 있다. 나는 그런 딸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엄마 뭐해? 지금 동전 넣는다! 시~작!"


나는 울컥하고 올라오는 감동을 쏙 집어넣고, 여기저기서 튀어 오르는 두더지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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