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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Oct 23. 2022

최고의 인생을 만드는 법

지인의 직장에서 동료 중 한 분이 지난밤 갑자기 사망했다고 했다. 그의 나이 겨우 50세였다. 지인은 불과 3일 전 그를 보았는데 그때는 결코 그날이 그와의 마지막 날임을 알지 못했다.


 친구는 남편이 오래전부터 사회인 축구 모임에 들어가 주말마다 축구를 해왔는데 어느 날 모임 중 한 분이 축구 중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그대로 눈을 뜨지 못한  119에 실려 갔다. 그는 얼마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친구와 남편은 그와 10년을 넘게 알았으며 가끔 가족끼리 모임도 했는데 갑자기 그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참 기분이 이상하고, 남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고 했다. 그의 나이는 불과 47세였다.


다른 친구의 삼촌은 멀리 혼자서 살고 계셨는데 친구는 혼자 사는 삼촌의 안부가 걱정되어 자주 전화를 했었다. 어느 날 전화하면 꼭 받던 삼촌이 전화를 계속 안 받자 걱정이 되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거실에서 죽은 채 쓰러져있던 삼촌을 발견했다. 친구의 삼촌은 친구가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쌍둥이 형제였다. 그녀는 삼촌을 아버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랑했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으로 인해 친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통해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한 번씩 주변에서 부고 소식을 듣는다. 친구나 동료 부모님의 부고 소식은 물론이고 나와 연배가 그렇게 차이 나지 않는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참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삶이라고 하지만 죽음이 언제 나를 찾아올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


 나는 살면서 결코 잊지 못할 죽음을 두 번 목격했다. 한 번은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였고, 두 번째는 우리 아빠였다.


할머니는 말년에 치매에 걸리셔서 요양원에서 지내셨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할머니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에 동생들에게 제안해 일 년 여간 주말마다 동생들과 교대로 강원도 홍천 근처의 요양원을 버스 2시간씩 타고 가서 할머니를 만나러 갔었다. 갈 때마다 할머니는 양말이며 속옷이 자꾸 없어진다며 여기 는 노인들이 내 물건을 훔쳐 가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그럴 때마다 메모해서 다음 주말에 가는 동생 편에 그 물건을 보냈었다. 그리고 빨리 돈을 많이 모아서 나중에 더 좋은 곳으로 옮겨드려야겠다고 기약 없는 중얼거림을 속으로 내뱉었다.


결국 할머니 2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할머니께서 그렇게 사랑하는 아빠보다 당신이 먼저 돌아가셔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는 이미 아빠 역시 혈액투석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넘기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만약 할머니 아빠의 죽음을 보셨다면 결코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셨을 거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평생을 병마와 싸우셨다. 아니 병마와 함께 살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당뇨를 시작으로 혈압, 당뇨망막병증, 신장암, 신부전으로 혈액투석, 그리고 뇌출혈로 생을 마감하실 때까지 많은 병이 아빠를 찾아왔다. 집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집에 탈출구가 없는 슬픔이 갇혀 있다는 뜻이다. TV를 보다가도 슬프고, 밥을 먹다가도 슬프고, 잠을 자다가도 덮치는 슬픔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럴 때는 세상의 모든 슬픔이란 슬픔이 전부 우리 집에 몰려와 사는 것만 같았다. 사람이 심연의 슬픔에 묻혀 살 때는 말수가 없어진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셨을 때도, 아빠의 생명이 조금씩 꺼져갈 때도 내겐 그 모든 시간 지옥 같았고 오직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에 오갈 때는 그런 나의 처지를 비관하느라 정작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빠가 죽음으로부터 지지 않으려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버티고 있었을 때 역시 나날이 병색이 짙어가는 아빠의 얼굴빛만 봐도 우울했다. 그래서 나는 눈물을 흘리며 언제 죽을지 몰라 너무 무섭다고 말던 아빠를 외면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때는 아빠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짐처럼 느껴졌다. 나의 슬픔이 나의 세계를 전부 덮어버려 정작 아빠가 죽음으로 가는 힘들고 외로운 길을 걸어갈 때 나는 미쳐 그 손을 잡아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람이란 한편으로 참 어리석은 존재이다. 지금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망각한 채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한다. 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이나 허망하게 보냈지만 이제 와 후회해봤자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두 번의 경험로 내가 그나마 배운 점이 있다면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조금은 깨달았다는 것이다. 


소슬히 부는 가을바람에 꽃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 가족과의 수다 속에서 피어나는 즐거운 웃음소리, 캠핑에서 불멍하며 생각과 잠시 멀어지는 순간, 여행 후 차 안에서 곤히 잠든 내 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 이 모든 단순하고도 소박한 순간을 나는 문득문득 감동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건 분명 후회와 걱정으로 점철되었던 시간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회가 있을 소중한 사람과 조금이라도 많은 시간을 보내자. 

나중에 떠올릴 때마다 눈물보다 웃음 지을 수 있는 좋은 추억을 최대한 모으자.

현재에 충실하고, 이 순간을 즐기자.

그것이 당신의 인생을 최고로 만드는 방법이다.


한 줄 요약 :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최고의 인생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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