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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Oct 20. 2022

이어폰은 잃어버리고 사람 보는 눈은 찾았다.

퇴근 후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헬스장을 나왔다. 그리고 무선 이어폰을 하나 꺼내 왼쪽 귀에 꽂았다. 평소 운동할 때나 집에 갈 때 음악을 들으며 가는데 양쪽을 다 꽂으면 외부 소리와 완전히 차단되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개 왼쪽 하나만 사용한다.


밖을 나오니 컴컴한 저녁 하늘 아래 공기가 싸늘하다. 겨울은 항상 이렇게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평소처럼 음악을 들으며 가다가 매일 들르는 마트에 들러 간단하게 시장을 봤다. 마트 카운터에서 계산하는데 나이가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계산원 아주머니가 지친 표정과 기계에서 나오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35,200원입니다." 나는 카드를 꺼내 계산하고는 곧장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충전케이스에 다시 넣으려고 가방을 열고 찾았는데... 아무리 가방 속을 뒤져도 이어폰 케이스가 보이지 않는다. 가방 속 물품을 다 꺼내서 샅샅이 살펴봐도 역시나 케이스가 없다.


대체 어디 간 걸까. 혹시 집 앞에 흘렸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집 밖으로 나와 근처를 살폈다. 길에는 바람에 춤추는 낙엽들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을 안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어폰을 잃어버렸는데 혹시나 다시 찾을 수도 있으니 당신 것을 하루만 빌려달라고 말했다. 대체 어디에 흘린 걸까. 요새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속상함은 어느새 자괴감으로 이어졌고 나는 괴로운 마음을 간직한 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갈 준비를 하고 어제 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며 출근했다. 환경미화원이 일찌감치 아침 일을 마친 듯 거리는 어제 봤던 낙엽 더미조차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어제 헬스장 건물 뒷문으로 나가며 이어폰을 꺼냈으니까 마지막 장소는 헬스장 뒤쪽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헬스장 뒷문 쪽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형광 조끼를 입은 환경미화원이 청소하고 있었다. 얼핏 그를 보았다. 그간 일하며 햇빛에 많이 그을린 듯한 시커먼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족히 70은 훌쩍 넘긴 노인처럼 보였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불만에 가득 찬 건지 표정에 변화가 없어 본능적으로 조금 거리를 두고 지나쳤다.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살폈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갑자기 들어올 때 보았던 환경미화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그가 청소하면서 내 이어폰을 발견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다시 뒷문으로 나가 여전히 청소하고 있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저... 제가 어젯밤에 이어폰 하고 케이스를 여기 흘린 것 같은데... 혹시 이 근처에서 이 정도 되는 검은색 작은 케이스 같은 거 못 보셨을까요?"

나는 그가 크기를 짐작할 수 있도록 양쪽 엄지와 검지를 이용하여 사각형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물었다.


무표정하던 그가 갑자기 겸연쩍은 눈으로 치아를 환하게 드러내고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못 보았다고 말했다. 순간 웃으며 드러나는 들쑥날쑥한 뻐드렁니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표정이 맑아 보였다. 아까 그의 무표정에 흠칫 놀라 재빨리 지나쳤던 나는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나쁜 사람 일리가 없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직장에 도착한 이후 종일 정신없이 일했다. 순식간에 퇴근 시간이 되어 또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괜한 미련에 헬스장 카운터에도 이어폰 케이스가 들어온 게 혹시 있는지 물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런 물건은 들어온 게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쉬운 마음은 잠시 덮고 운동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어제처럼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계산하려고 카운터에 다가가는 데  그 생각이 퍼뜩 떠올라 어제 계산했던 그 50대 여인이 있는 카운터로 가서 계산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어제저녁에 여기에 이어폰 케이스를 흘린 것 같은데 보셨을까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거 손님 거였구나! 누구 건지 몰라서 가지고 있다가 저기 안내데스크에 맡겨놨으니 거기서 찾아가면 돼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저는 못 찾을 줄 알았어요!"


"에이, 못 찾긴 왜 못 찾아요. 내가 잘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2미터쯤 옆에 있던 안내데스크로 가서 이어폰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을 돌려 나가려는데 등 뒤에서 계산원 그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찾았어요? 다행이네. 잘 가요!"


나는 그녀를 향해 다시 90도로 고개를 숙이고 목례하며 마트를 나왔다.


오늘은 평소 관심도 없이 스쳐 지나쳤던 두 사람에게 푸근한 미소와 정겨운 마음을 받았다. 일상생활  중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을 볼 때 우리는 겉모습이나 표정, 또는 옷차림으로 순식간에 그 사람을 평가하고 어떨 것이라고 결정지어 버린다. 그러나 그들에게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네 보면 그들 역시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걸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단 몇 마디 소한 대화만으로도 무표정한 가면은 금세 벗겨진다. 그 단순한 사실을 오늘에야 진정으로 깨달았다.

 

이따 퇴근하면 그 마트에 다시 들러 같은 카운터에서 계산해야겠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그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걸어보리라.



한 줄 요약 : 관심의 눈으로 조금만 들여다보면 푸근한 미소와 정겨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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