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모험가로 키우자

by 안희정

나에게는 Best life explorers(최고의 인생 탐험가들)라는 온라인 독서 모임이 하나 있다.

2017년 10월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모임은 어느새 4년이 훌쩍 넘어 햇수로만 5년째로 들어가는데 나는 이 모임이 처음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일원으로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간혹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 주요 멤버로는 리더인 아만다를 비롯하여 나미코, 올해 새로 들어온 레이철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다.

아만다는 한국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선생님이고 나미코는 한국 사람과 결혼해 여기 정착해 사는 일본인이며, 레이첼도 홍콩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영국인 선생님이다.

우리는 매달 1권의 책을 돌아가며 정한 후 그 책을 한 달에 걸쳐 나누어서 읽고 매주 일요일 저녁 8시마다 화상채팅으로 1시간 동안 그 주에 읽었던 내용을 토론하는데, 처음 영어 말하기를 연습하기 위해 시작했던 이 모임은 단순히 영어 연습이나 책에 관한 토론뿐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관점을 들을 드문 기회라 한국에서 태어나 지금껏 평생을 살아온 내게는 매우 유익한 모임이다. (내가 국제적인 독서 모임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영어를 매우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영어 읽기 실력이 부족한 나 때문에 항상 한국어로도 번역되어있는 책만을 고른다. 나도 원서를 모국어처럼 읽고 싶다...)


얼마 전 그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토론 중 가족 구성원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한국사람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보통 배우자를 '누구 아빠', '누구 엄마'라고 많이 부른다고 하니 나미코가 일본 사람들도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아만다는 미국에서는 결혼 후 아이가 있어도 보통 애칭이나 이름을 부른다면서 배우자를 엄마, 아빠로 부르는 것에 대해 좀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그 이유에 대해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개인보다는 집단과 집단 내 역할을 우선시하는 동양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고 혼자 결론지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올라온 주제는 우리가 보통 아이들을 부를 때 ‘공주’ 또는 ‘왕자’라고 많이 부른다는 것이다.

요즘엔 집마다 하나 또는 둘 정도만 낳는 게 대세이고, 내 주변에도 결혼 후 딩크족으로서 아이 없이 인생을 즐기며 사는 친구가 둘이나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 세상에 나온 아이들이 얼마나 귀하게 자라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나 역시 늦은 나이에 낳은 딸이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다.

고집을 부리거나 말을 잘 안 들을 때는 물론 화가 나지만 세상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내가 가진 사랑을 다 쏟아붓는 아이이다.


나도 ‘공주님’이라는 애칭을 자주 쓴다고 했더니, 아만다가 그래서 유치원에 아이 대부분이 공주, 왕자 같다고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가정에서 비가 오면 젖을세라 바람 불면 날아갈세라 귀하게 부르고 키우니 아이들이 자신을 남보다 우월한 존재로 인식해 선생인 자기 말을 잘 듣지 않고, 어쩌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우리 엄마는 나한테 안 그러는데요.’ ‘우리 아빠가 그래도 된다고 했어요.’라는 식으로 응수한다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는 아무리 천사같이 귀여운 아이들이라고 해도 기가 막혀 말 안 나온다니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직업은 그야말로 많은 인내가 필요해 보인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우리 딸을 오만하고 교만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새로 부를 적당한 별칭에 대해 함께 고민하다가 레이첼이 아이를 우리 모임의 이름처럼 탐험가로 부르거나 아니면 모험가로 바꿔 불러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나는 그 멋진 제안을 다음 날부터 바로 실천했다.


우리가 사랑을 담아 부르는 별명이 곧 아이들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이를 부르는 단순한 행위조차 숙고하게 된다.

현재 소속되어있는 조직이나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며 키우는 것도 좋지만, 그 속에 가려진 개인의 정체성이 바르게 건설되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다음 세상을 위하는 매우 중대한 일이다.


물론 이것이 공주, 왕자로 불리며 자란 모든 아이가 삐뚤어진 정체성을 가지며 자란다는 논리는 아니다.

어떤 언론 매체가 경제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풍요롭게 자란 MZ 세대에 대해 기성세대보다 극단적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며 비판을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집단의 가치와 개인의 가치 사이의 조율을 하지 않고 개인의 가치만을 중시하는 일부 이기적인 사람들에 의해 생긴 편견이다.


요지는 집단 역시 개인이란 구성원들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개인이 바로 서야 집단도 튼튼해질 수 있으니 개개인을 최대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키우자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 일단 나부터라도 훗날 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내 아이가 그 속에서 도도한 공주가 되어서 남을 무시하지 않고,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과감하게 탐험하고 도전을 즐기며, 동시에 들과도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키우는 노력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