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걷히지 않다

by 안희정

벌써 7개월째 이어진 새벽 기상으로 해뜨기 전 눈을 뜨는 게 많이 익숙해 나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다.


문제는 우리 딸.

아침마다 어르고, 달래고, 화를 내어 봐도 결코 쉽게 일어나는 법이 없다.

매번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이와 평화적인 협상을 시도하지만, 딸의 귀를 향해 들어간 말은 일방통행 도로 위 한쪽으로 사라지는 자동차들처럼 결코 이쪽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만의 논쟁 아닌 논쟁의 끝은 언제나 흐물흐물 거리는 연체동물을 들어 올리듯 몸무게 40kg 아이의 겨드랑에 양팔을 끼우고 겨우겨우 일으키며 마무리된다.

그러면 몸의 절반 이상을 내게 기댄 아이는 화장실까지 질질 끌려가 또 변기에 앉자 한참을 멍하게 있기 부지기수이다.


며칠 전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오늘은 화를 내지 말아야지.’

매회 극적 효과를 위해 중심인물 중 한 명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심장을 벌렁거리게 하는 날카로운 효과음이 깔리고 극 중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끝나는 일일드라마적인 결말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비장하게 한숨을 쉬고는 아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우리 예쁜 딸, 아침이에요. 일어나야지.”


“..........”

아무리 억지웃음 소리를 내어봐도 아이는 오랜 세월 이불에 붙어있던 화석이 된 듯 미동조차 없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저울이 기울어지듯 화가 조금씩 얹어지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은 눈 아래로 입이 천천히 열리더니 나지막이 말이 흘러나왔다.

“엄마.... 아직.... 잠이 걷히지 않았어...”

순간 그 말이 던지는 정체 모를 힘에 멈칫하였다.

잠이 걷히지 않았다니, 이 얼마나 천재적인 발상인가?

역시 세상의 모든 아이는 언어 천재다.

아이를 화장실로 밀어 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말이 담긴 깊은 철학에 조금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그렇다. 모든 걷힐 수 있는 것들을 바꾸어 말하면 그전까지 둘러싸여 시야를 막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밤새 나를 덮고 있던 잠이 걷혀야 의식이 완전히 깨어날 수 있다.


비단 잠뿐만이 아니다.

구름이 걷혀야 선명해진 하늘 위로 해와 달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안개가 걷혀야 탁 트인 풍경도 펼쳐질 수 있다.

연극은 커튼이 올라가야 시작되고, 우리의 안구를 싸고 있는 망막이란 신경조직 막에 이상이 생기면 망막증이 발생해 시야를 흐린다.

그런가 하면 한여름 호텔이나 은행, 병원 등에서는 정문이 열려도 에어 커튼이 위에서 내려와 내부의 차가운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외부의 더운 공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해 쾌적한 온도를 유지해 준다.

심지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을 베일에 싸인 존재라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이렇게 다양한 표현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싸여있고 걷힐 수도 있는 존재 중에는 '우리의 마음을 둘러싸는 막'들이 있다.

마음에 어둠의 막이 드리워진다면 상황을 올바르게 볼 수 없다.

편견이란 막이 생기면 충분한 근거 없이 사람을 판단하게 되고, 우울의 커튼이 드리워지면 신체적 활동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 급격하게 감소된다.

화라는 거대한 감정 핵폭탄의 폭발로 핵 구름이 솟아오르면 그 구름의 막이 모든 이성을 집어삼키는 경우도 생긴다.

한 번 이렇게 부정적인 막이 마음에 형성되면 걷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마음의 검은 장막들을 걷어낼 수 있을까.


우선 편견의 막을 걷으려면 마음의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신문 기사나 유튜브 영상도 한쪽으로 편향된 것만 보지 않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울의 커튼을 걷으려면 일단 조금이라도 움직여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수록 무엇이든 해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세수를 하고 밥을 먹는 작은 행위부터 정성스럽게 시작해보자.

화의 구름막은 진정이 될 때까지 그 상태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이 최선이다. 화를 인지하고 도가 옅어질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이 되는 요소를 객관적으로 보고 내가 생각하는 암울한 상상들이 실제로 일어날 일인지 아닌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해 쓸데없는 감정의 동요를 경계하자.


초에 캄캄한 막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막 안에 감춰진 세포의 핵과 같은 자존감을 강화해보자.

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 앞에 그런 막은 손으로 쉽게 걷어낼 수 있는 커튼과 같다.

자존감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응원하며 사랑해야 한다. 또한 내가 못 한 일을 생각하기보다 내가 한 일에 집중하고 가능한 한 많은 성취감을 느껴보자. 작은 성취감들이 쌓이면 처음에는 결코 이루지 못할 것 같았던 큰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기분이 너무 내려가는 날에는 잠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자신을 위로하는 게 좋다. 또 시간을 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도 만들어보자.

비관적이고, 회의적이고, 소극적이고, 절망적인 늪에 빠지는 날은 누구에게나 있다.

단지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는 것과 그 속에 묻혀버리는 것의 차이일 뿐.

마음의 시야를 가리는 막으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 시원한 눈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