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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Jan 27. 2023

나는 평범한 날이 좋다.

평범한 삶에서 느끼는 심심한 감동에 대한 이야기

프롤로그.

          

“엄마, 심심해!”    

       

방학을 맞은 열한 살짜리 딸이 아침에 눈 뜨자마자 저를 애타게 찾더니 제일 먼저 꺼낸 말이었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던 전 그 말을 듣자마자 시큰둥하게 대답했죠.         

  

“사람이 어떻게 항상 재미있게 사니? 인생은 원래 심심한 거야.”    

       

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딸은 입술을 삐죽거리고 곧바로 방에서 태블릿 pc를 가져와 거실 소파에 폴싹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곤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켜고 양반다리를 한 채 그 위에 얹고 양손으로는 닌텐도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귀로는 유튜브를 듣고, 눈과 손은 게임 삼매경에 빠진 모습은 마치 잠시의 지루할 틈새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로 보였습니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아이는 모니터 속 세상과는 판이한 단조로운 생활에 흥미를 잃어버린 걸까요.

           

이 현상이 비단 아이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퍽퍽한 현실을 외면하려고 끊임없이 새로운 플랫폼을 찾아 현실 도피를 시도했습니다. 예쁜 인테리어를 뽐내는 인스타그램 속에 수많은 집과 카페, 숨 쉴 틈 없이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넷플릭스 드라마, 클릭하지 않을 수 없는 자극적인 섬네일을 가진 유튜브 동영상, 눈을 현란하게 하는 신비로운 장면이 가득했던 판타지 영화, 모두 제가 현재의 삶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선택했던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그 시간이 달콤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죠. 찰나 같은 회피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종일 직장에서 일만 하는 자신이 서글펐고, 지친 몸으로 퇴근해 씻기 싫다는 아이와 끊임없이 말씨름하는 일상이 힘들었고,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해서 여유롭게 사는 친구들과 비교해 아무리 노력해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 형편이 싫었습니다.           


답답한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랐습니다. 책을 좋아하던 저는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탐닉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희망에 부풀어서 이렇게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죠. 책을 덮은 순간 그 속에 들어있던 변화를 위한 도약적 제안은 저의 현실과 맞지 않다고 변명하며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았습니다. 습득은 하지 않는 배움만을 한 셈입니다.       

   

결국 모든 원인과 해결책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분명 변화를 원했지만 제가 변하기는 싫었던 겁니다. 저는 사실 화려한 삶을 동경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도 넓은 집과 고급스러운 차, 남들이 고개 숙이는 지위와 명예가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동경은 어느 순간부터 욕망이 되었고, 욕망은 집착이, 집착은 좌절이, 좌절은 절망으로 이어졌습니다. 계속 커지는 욕망과 좌절의 굴레에 갇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삶을 뚫어져라 직시했습니다. 그러자 줄곧 지겹다고 따돌리고 업신여겼던 제 삶 속에서도 의미 있고 소중한 순간이 하나둘씩 발견되었습니다. 피로를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 퇴근길 서쪽 하늘 붉은 저녁노을이 녹아든 구름, 친구의 무심한 듯 툭 던지던 힘내라는 말, 여행지 밤하늘에서 보았던 다정다감하게 반짝이던 달과 별, 그 모든 사소한 순간이 실은 저를 지탱해주던 진정한 행복이었음을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삶도 제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인생 대부분의 날이 참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고 때로는 영문도 모른 채 슬퍼집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삶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 때 당하기만 하고 살아야 할까요. 이상화의 시처럼 빼앗긴 들에 사는 사람은 봄이 찾아오더라도 봄의 환희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삶의 노예가 아닙니다. 삶의 주체는 우리 자신입니다.     

      

저는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제 삶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평범하고 재미없는 하루에서 흥미롭고 의미 있는 순간을 찾아 샅샅이 뒤졌습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예전과 똑같은 날을 보냈어도 제 안에는 분명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당신도 가치 없는 삶이라 치부했던 나날에 특별하고 소중한 순간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심심했던 일상을 신나는 축제로 만들기를 기대합니다. 생의 여정을 걸으며 저를 웃기고 울리고 감동하게 했던 흔한 날의 의미를 당신에게도 깨닫게 해주는 일, 그것이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한 줄 요약 : 평범한 일상에서 소중한 순간을 발견하면 당신의 인생을 축제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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