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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Jan 29. 2023

사탕 같은 중독

또 시작이다. 목에서 출발한 심한 갈증이 금방이라도 내 몸 전체를 덮칠 것만 같았다.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서 사탕 팩을 열었다. 개별 포장된 사탕을 하나 꺼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봉지를 뜯고는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요즘 이 사탕을 매일 적게는 다섯 개에서, 많게는 일고여덟 개씩 먹고 있다. 사탕을 먹을 때마다 기분이 상쾌해져 사탕보다도 감미로운 보상에 만족감을 느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러니까 때는 한 달 하고도 보름 전쯤 나와 딸이 코로나에 걸렸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확진 판정 후 이틀 만에 멀쩡하게 일어난 딸과 달리 나는 나흘간 몸살을 심하게 앓았었는데 일주일의 격리 기간이 지나고도 그 여파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중 특히 나를 괴롭혔던 증상이 바로 기침이었다.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수시로 올라오는 잔기침이 여간 괴롭고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기침을 할 적마다 주변의 눈치가 보여 마른침을 대신 꼴깍 삼켰다. 임시방편으로 아침저녁으로 기침약을 복용하고 물을 자주 마셨으나 기침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지인이 기침에 좋다는 ‘마누카 목청 벌꿀 캔디’를 소개해주었다. 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인터넷으로 바로 5팩을 주문했다. 그날부터 목이 간질거리거나 기침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그 사탕을 먹었다. 효과는 생각보다 매우 좋았다. 사탕의 멘톨 성분이 목뿐만 아니라 폐까지 전달되어 막힌 길이 뻥 뚫리듯 시원하고 개운했다. 모처럼 아무런 염려 없이 숨 쉬는 즐거움을 느꼈다. 그 느낌이 좋아서 처음 하루 한두 개씩 먹던 사탕의 양이 조금씩 늘어났다. 마스크를 낀 채 사탕을 빨 때면 맵싸한 향이 눈을 공격했다. 무방비 상태의 눈이 서러움의 눈물을 줄줄 흘렸지만, 그 정도 고통은 목캔디가 주는 청량감에 비견할 바가 아니었기에 나는 눈이 아픔을 감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점점 사탕에 중독되어 갔다. 2주일 만에 목캔디 5팩을 다 먹어 치웠다. 하루도 참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목캔디 5팩을 더 주문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사탕을 입에 물었고 자기 직전에도 사탕을 먹고 자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기침이 나오지 않았지만, 목이 여전히 칼칼하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사탕을 끊지 못했다. 두 번째로 구입했던 사탕은 더욱 빠른 속도로 고갈되어 갔다. 나는 속으로 더는 안된다. 그만 먹자고 힘없이 외쳤지만,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연기처럼 사라졌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마지막 남은 단 한 개의 사탕이 노트북 옆에서 요염한 개나리꽃 빛깔의 옷을 입고 나를 유혹했다. 나는 노트북 화면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채 삼십 분이 넘도록 계속 사탕을 흘깃거리며 은밀한 밀당을 했다.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정말 문제로다. 본능과 이성이 격렬한 설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손은 이미 유혹에 굴복당해 사탕 봉지를 만지작거렸다. 빠스락빠스락 매혹적인 소리를 내는 포장지를 벗기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담배에 중독된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려나. 처음에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데 분명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탕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수중에 없으면 불안한 감정이 증폭되었다.           


중독은 말 그대로 풀이하면 독의 한가운데에 갇힌 상태이다. 이처럼 사소한 습관이 중독으로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잠깐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가볍게 마시는 술 한잔이나 깊은 한숨을 감추기 위해 피우는 담배 한 대, 잠이 잘 안 오는 밤에만 복용하던 수면제,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리모컨을 눌러 결제했던 홈쇼핑의 물건, 친구들끼리 심심풀이로 시작한 도박, 호기심에 경험한 마약까지 일상을 위협하는 무서운 독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약해진 틈에 살금살금 들어와 어느새 우리의 주인 자리를 차지한다. 중독은 대부분 시작이 미미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순간의 안락감에 빠져 영혼이 조금씩 갉아 먹히고 있는지 미처 눈치채지 못하다가 결국 자유의지까지 빼앗기고 만다.

         

동화 미녀와 야수에서 마법에 걸려 야수가 된 왕자는 미녀 벨의 마음을 얻기 위해 벨이 좋아하는 책이 빼곡히 꽂혀있는 서재를 보여주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벨과 함께 흥겹게 춤을 추고 그날 밤 성에서의 생활이 행복한지를 물었다. 그러자 벨은 그 물음에 “갇혀 있는데 뭐가 좋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흡족한 시간을 제공받는다 한들 자유를 잃은 채 받는 호의에 우리는 즐거울 수 없다. (그러므로 야수가 아버지에게 가려는 벨을 놓아주지 않았다면 벨과 야수의 진정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리라)

            

중독은 가장 큰 속박이다. 중독의 삶을 산다면 인생은 불행해진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처음 충치가 생겼을 때는 작은 비용으로 충치 부분만 긁어내는 간단한 치료로 끝나지만 충치가 이 깊숙이 파고들면 결국 잇몸까지 망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를 뽑고 그 자리에 임플란트 시술까지 하는 대공사를 해야 한다. 긴 시간과 큰 비용이 초래되며 그 과정에서 고통이 함께 수반된다. 지금 끊어야 한다. 나는 사탕이 없던 시절에도 별 탈 없이 잘 살았다.           


나는 마지막 남은 목캔디를 사정없이 집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잠시 아쉬움과 죄책감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나 곧 이상하게 후련하고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비로소 비정상적인 관계의 의존 대상으로부터 자유를 되찾았다.


한 줄 요약 : 사소한 나쁜 습관이 중독으로 이어지기 전에 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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