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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Mar 03. 2023

무의미한 인생의 의미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그런 물음이 제기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삶을 재미있는 유희처럼 살아갈 때에만 해소될 수 있습니다.
- 박찬국,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중에서  -


어찌 보면 시작은 경미했다.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몰랐었고 내 삶의 보이지 않는 면은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곪아진 상처에서 나온 고름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자 나는 인생의 의미를 찾겠다는 말로 새로운 치료법을 시도했다.


인생에 대한 의문을 시작한다는 건 현재에 대한 불만족에서 기인한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은 내가 실은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 실이다. 나는 쉽게 상처받고 슬퍼했다. 그걸 감추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종의 법칙처럼 감추는 행위도 학습과 연습에 의해 충분히 실력이 향상된다. 제일 쉬운 방법은 표정을 감추고 입술을 굳게 다물면 된다. 가슴 한가운데에서 폭풍우가 몰아치고 쓰나미가 모든 내장 기관을 휩쓸고 가더라도 칙칙한 얼굴 가죽의 두께는 그 모든 현상을 감추기에 충분했다.


그사이 자신에게 일방적인 말로 세뇌했다. '침착하자. 별일 아니다. 이겨낼 수 있다. 종이를 꾸깃꾸깃 손으로 구기듯 지금, 이 순간을 작게 만들자.' 그런 말을 할 때면 나는 종이를 구기는 소유자가 아닌 종이 자체가 되었다. 종이의 시선에 담긴 장면은 비현실적으로 굴절되었다. 남몰래 비뚤어진 시선과 냉소적인 마음으로 사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현안으로 눈과 귀가 덮여 있기에 타인에 대한 관심은 그리 길지 않다. 행복이 저만치 멀리 환영처럼 둥실둥실 떠 있었다.      


삼일절 아침 딸은 엄마와 함께 종일 넷플릭스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개학 전 마지막 휴일이라 나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우린 아침 식사 후 넷플릭스를 열고 본격적으로 무얼 볼지 이리저리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몇 개의 후보가 있었지만 결국은 예상대로 요즘 딸이 흠뻑 빠져있는 시리즈를 1화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우린 이미 그 시리즈를 다 본 상태였기에 나는 빠른 속도로 흥미를 잃고 슬그머니 핸드폰을 보았다. 그것도 잠시,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일어난 나는 그대로 딸의 방으로 들어와 그 전날부터 읽기 시작한 책을 펼쳤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있지만 각자의 휴일을 즐겼다.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 종일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던 나는 핸드폰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위해 밤 9:25에 알람을 설정해 놨다) 어느새 잘 시간이었다. 책 속에 세계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그 속에서 헤어 나오기가 싫었다. 그래도 자야 한다. 내일은 출근하는 날이다. 딸과 함께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몸을 눕혔다. 내가 개학 전 마지막 휴일을 잘 즐겼느냐고 묻자 딸은 내일이 개학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며 장난스러운 한탄을 내뱉었다. 그런 딸이 귀여워 꼭 안아주었다.  딸의 머리가 딱 붙어있던 내 겨드랑이에서 잔잔한 희열이 흘러나와 곧 온몸을 적셨다. 그것은 분명 상처에서 나온 고름과는 다른 향기가 있었다.


인생의 의미를 내 안에서만 찾으려고 했었다. 나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기에 혼자서 해결하려고 늘 발버둥 쳤다. 답이 없는 곳에서 답을 찾는 것만큼 허무한 일이 없다. 해답을 내 속에서만 찾으려고 했을 때 나는 결코 답을 찾지 못했다. 깨달음은 나를 경험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는 경험에서 온다.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의미는 저 멀리 사라진다. 찾으려 하지 말고 단지 느끼기 시작할 때 비로소 엄마의 품처럼 의미가 포근하게 다가온다.      


아이가 놀이로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듯 인생을 유희로 느끼고 살아가자는 말은 삶의 의미가 삶에 대한 의문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 양치기 산티아고는 어느 날 밤 꿈에서 본 보물을 찾아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갖은 고초와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을 겪었지만, 연금술사의 도움으로 목적지인 이집트 피라미드까지 도착한 그는 마침내 보물이 자신의 출발지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가 얻은 진정한 보물은 처음 떠났던 땅 아래 묻혔던 금은보화가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써 내려간 신화였다.


나도 이제 보물찾기하듯 인생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기보다 내 삶을 처음 탄생이 시작되었던 죽음으로 돌아가는 여행으로 만들고 싶다. 여행에서 맑은 날만 있지 않듯이 내게 닥치는 슬픔과 우울도  여행의 일부로 여기고 싶다. 책을 펼치면 움츠러든 자아가 배움으로 따뜻한 새 옷을 입듯이 오늘 사이사이에 낀 행복한 순간을 쫙 펼쳐서 내 삶에 입히고 싶다. 내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느꼈던 향기에 머물러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인생의 의미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한 줄 요약 : 여행하듯 살다 보면 언젠가 종착지에 도착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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