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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Mar 05. 2023

싸이월드를 복구했다. 오래 묵은 부끄러움이 복구되었다.

싸이월드를 복구했다. 약 20년 전 기억이 하나씩 소환되었다.

      

미니 홈피의 제목은 ‘그리고 후일담은 계속된다.’였고 연한 자줏빛 미니 룸 안의 나는 뽀글뽀글 핑크빛 머리를 하고 파이팅 푯말을 당차게 들고 있었다. ‘나는 오늘 행복하기로 선택한다!!’고 20년 전에 했던 공허한 말풍선의 외침은 마치 어제 딸이 학교에서 받아와 냉장고에 붙인 알림장처럼 여전히 선명하게 보였다. 그 옆으로 유일한 친구인 선인장 양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들고 특유의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십 대의 나는 풋내 나게 음울했었다. 어쭙잖은 감성이 귀여워 하나씩 클릭하며 혼자서 피식하고 웃었다. 영화 속에 파묻혀 살고 슬픈 눈빛을 가진 배우들의 삶을 공상하던 나, 혼잣말을 즐기던 나,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사람인 척했던 나,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하고 의미 없는 내적 울림을 말풍선처럼 터트려보았다. 순간 가슴이 살짝 아려왔다.

     

그럴 리 없다. 내 삶이 별로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퍽 잘 알고 있다. 그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별반 차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지 모든 것이 더 서툴렀을 뿐.

글도 마음도..     


그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 오랜 기록을 하나 끄집어내 본다. 다음은 내가 19년 전 썼던 영화 감상문이다.


도플갱어 – 구로사와 기요시     

‘밝은 미래’, ‘카리스마’에 이어 세 번째로 보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도플갱어’는 앞선 두 영화와는 달리 생각보다 그리 음울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의 뒷맛은 내게 기나긴 여운을 남겨준다.      

프리다 칼로의 ‘두 명의 프리다’란 그림에서처럼 도플갱어는 내 속의 나, 즉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영화 간간이 보여주는 화면의 양분화로 인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이 생소한 화면 기법(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지만)을 통해 영화는 역시 영상의 언어임을 새삼스럽게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두 갈래로 나뉜 화면처럼 인간은 분명 누구나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인간이란 보다 다양한 인격체가 공존하는 존재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중성에 대해 나를 대입시켜 보자면 그것은 ‘파괴하고자 하는 본능’과 ‘생산하고자 하는 본능’으로 나뉜다.     

생산의 본능은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모성 본능도 여기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모성이란 단어는 그리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가장 근원적인 시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창조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파괴욕은 비단 전쟁과 같은 거대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직 죄책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잠자리나 개미와 같은 생물을 죽이는 쾌감을 느껴보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 몇 시간씩 공을 들인 도미노를 쓰러뜨리는 쾌감도 여기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공포영화 역시 자신을 자학하는 데서 오는 쾌감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한 경우 SM 플레이를 즐기는 자도 있겠다)    

 흔히 ‘노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은 이 상반된 본능을 적절히 중재할 충분한 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저울을 수평으로 유지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쳐도 그것이 넘쳐흐르지 않도록 반대편도 채운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균형이 깨어진 자들을 ‘어브노멀’ 혹은 ‘정신적 환자’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겐 너무도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때론 그것이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때에는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어브 노멀’인 상태로 살아간다. 그러나 결코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그렇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니까. 생각해 봐라. 첫 번째 메트릭스가 무너진 이유를...

- 2004년 3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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