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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Apr 10. 2023

문인의 밤

길어야 백년...

우리 인생 말이다.


얼마 전 직장에서 좀 힘든 일이 있었다. 나는 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문제의 원인이 된 이에게 언성을 높여가며 시말서를 요구했다. 갑작스레 당한 공격에 그 직원은 사직서를 내 책상 위에 얹어놓고 짐을 싸고 가버렸다. 그리고 그길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나와 2년간 함께 일했었다. 직장생활에서의 인간관계란 이런 것이다.


나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혼자서 맥주를 마시고 잠이 들었다. 술기운이 없으면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잠을 자지 못한다면 필시 사악한 밤이 온갖 나쁜 상상으로 나를 고문할게 분명했다.


요즘 부쩍 술이 늘었다. 20년의 직장생활 중 회식하면서도 맥주 3잔 이상 마셔본 적이 없었는데 글쓰기 시작하면서 일어난 변화 중 하나가 술이다. 나는 왜 스무 살 때처럼 술을 다시 즐기게 된 걸까?


술은 좋은 변명거리다. 다음날이면 후회할 불안한 마음을 타인에게 내뱉을 때 어제 좀 취했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글 벗이 한 말이 머릿속에 맴돌다가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문인이라면 술을 해야 한다.’ 나는 정말로 문인이 되고 싶은가보다.


어린 여자아이가 어른이 되고 싶을 때 엄마의 립스틱을 발라보듯이 나는 글을 제대로 쓰기도 전에 진짜 문인들의 밤을 흉내 내고 있다.   

   

읽기가 글과 나 사이의 유일한 끈이었다. 그건 마치 사제 간같이 존경과 감사가 오가는 훈훈한 관계였다. 아이가 성장하면 선생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다. 글쓰기 새내기는 어느새 글을 스승이 아닌 사랑으로 보게 된다. 동경이 사랑이 되면 각종 불안정한 감정이 쏟아진다. 나는 글을 사랑했다가도 미워했고, 싫어했다가도 그리워했다. 삐뚤빼뚤 립스틱을 바르던 아이가 성인이 되면 앳되고 미숙한 시절을 그리워하듯이 나도 진정한 문인이 된다면 지금의 서투른 시기를 그리워하게 될까.   

   

글쓰기.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도 가슴으로 놓지 못하는 건 지금의 불안정한 이 순간이 사실 제일 좋은 순간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이것저것 재지 말고 살자.

마음 가는 데로 쓰자.

어설픈 마음도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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