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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Apr 30. 2023

글쓰는 나는 나였던 내가 아니다

어슴푸레한 새벽, 나는 책상에 앉아 소설에 빠졌다. 소설 속의 여자아이는 용감하게도 혼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나는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애간장이 탔다. 마음은 곧 한 조각 구름이 되어 조용히 아이의 머리 위에서 졸졸 따라다녔다. 구름의 은밀한 미행을 아이는 눈치채지 못했다. 잠시 후 그 아이는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 구름은 곧장 무채색의 공기로 변신해 아이의 숨으로 빨려 들어갔다.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 다시 돌아가야 해. 나는 살고 싶어.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곧 구원의 응답에 닿았다. 우리는 저쪽 습지 풀밭에서 바짝 붙어 낚시하는 소년을 발견했다. 누군가를 본 기쁨이 페포 속 공간에 아침 햇살처럼 번져나갔다. 이윽고 아이는 소년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제야 안도하고 순식간에 아이의 숨 밖으로 나와 책을 덮었다. 비록 이번에는 아이가 무사했지만, 앞으로 그 아이에게 남은 나날이 늘 오늘처럼 행운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이란 독자의 흥미를 끌어야 하고 따라서 이야기를 만드는 신적인 존재인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름만 다를 뿐인 온갖 양념 같은 고초를 계속해서 소설 속에 뿌려야 할 테니까. 그렇게 되면 주인공은 장애물을 넘기며 성장하고 더 강해지며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선사하리라. 명작이라고 불리는 모든 작품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이라는 신도 고난과 역경이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인간을 시험한다. 이때 덜컥 포기하는 자는 죽을 때까지 후회를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다. 설사 이루고자 하던 일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상관없다. 오늘은 실패했더라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만 갖추고 있다면 이 또한 지나가는 방지턱 같은 순간일 뿐이다. 신도 그런 인간에게는 결국 아량을 베풀게 되리라.      


9,900원짜리 상품을 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9,900원과 10,000원은 사실 같은 가격이다. 많은 사람이 길거리에 100원짜리 동전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더라도 무릎을 쪼그리고 등을 구부리는 수고를 하며 동전을 줍지 않는다. 100원이 그 정도 행동을 불러일으킬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9,900원과 10,000원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런 근소한 차이의 속임수에 알면서도 눈 뜨고 코 베이듯 지갑은 즉시 열린다.      


무언가를 목표로 두고 달릴 때 우리는 때로 성공의 문턱에서 포기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의 능력은 100원의 차이처럼 생각보다 별반 격차가 없는 경우가 많다. 단지 노력해도 더는 발전하지 않는 순간에 나아갔느냐 멈췄느냐의 다름일 뿐이다. 현재 열정을 다했던 일을 그만두고 싶다면 지금이야말로 목표에 거의 다다른 상태일 수도 있다.      


요 며칠 욕망과 절망이 내 눈알을 하나씩 삼켜 사탕처럼 쪽쪽 빨아댔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감정이라도 절대 강자인 시간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시간 앞에 나는 고개를 조아리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  앞에 본질적인 질문이 던져졌다. 나는 왜 글을 쓰기 시작했던가. 생각을 글로 풀 때마다 뇌 속의 어지러운 방이 정리되던 느낌. 글 하나를 완성했을 때마다 느꼈던 환희. 나라는 영혼이 자유로워졌던 순간.


이제 나는 작년 6월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그때의 내가 아니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었다. 새로운 자아에게 망설임은 없다. 이대로 멈추지 않겠다.

나의 글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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