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주마등
저기요 일어나 보세요! 저기요 괜찮으세요?
가래가 낀 탁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었고 누군가 연신 내 몸을 잡고 계속 흔들어 대고 있었다.
가뜩이나 술을 잔뜩 먹어서 머리도 아파 죽겠는데 도대체 누가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거지?
어 이제 정신이 드세요?
간신히 눈을 떴을 때 난 집 앞 지하철 역 입구 근처에 나와 있는 기다란 돌기둥을 껴안고 있는 상태였다.
2003년 12월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군대 말년에 사회에서 노래하다가 들어온 후임에게 잠깐 배운 기타 코드 몇 개.
주야장천 김광석 노래만 연습했었다.
실력은 보잘것없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왜 그리 광석이 형 노래가 좋았는지 모르겠다.
'거리에서', '먼지가 되어' 달랑 두 곡. 그나마도 떠듬떠듬 코드 하나하나 천천히 짚어가며 불렀었다.
완곡을 하려면 10분은 넘겨 걸리곤 했다.
물론 내 앞에 관객으로 강제 동원된 후임들은 매번 곡이 끝날 때마다 브라보를 외쳐야만 했지만..
제대하고도 그 노래들이 좋아 인터넷 통기타 초보 모임 카페에 가입했고 신입회원 환영회를 한 날이었다
돌기둥을 껴안고 있는 내 온몸은 설탕을 뿌려놓은 핫도그처럼 새하얗게 눈으로 덮여있었다.
순간 정신이 돌아오자 몇 시간을 그러고 있었는지 온몸이 삐그덕 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괜찮으세요?
가래 낀 목소리 청년은 다시 한번 물었고 그 옆에 다른 한 명이 더 나를 지켜보는 것이 느껴지자
부끄러움이 밀려왔고 벌떡 몸을 일으키며 그 청년에게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치며 멀어졌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 헤어진 시각은 밤 11시 30분, 지하철은 30분 거리.
대략 밖에서 3시간은 이러고 있었는 모양이다.
하이고 이 미친놈 아야, 길바닥에서 얼어 죽지 않은 게 천만 억수로 다행이다. 갸가 널 안 깨웠으면 어찌 됐겠노? 인마야 니는 지금쯤 이 할아비랑 여서 바둑이나 두고 있었을끼다.
중학교 때 돌아가신 몰래 막걸리 주시던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던 걸 보니 아직 술은 덜 깼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살려준 고마운 청년에게 감사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내내 걸렸다. 어떻게 보면 생명의 은인인데 그렇게 도망치듯 오다니.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지 않나, 그럼에도 그 청년은 용기를 내서 깨워 준 것일 텐데, 얼마나 머쓱했고 황당했을지 마음이 계속 무거웠다.
재킷 속 지갑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기요 일어나 보세요! 저기요 괜찮으세요?
가래가 낀 탁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었고 누군가 연신 내 몸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술을 잔뜩 먹어서 머리도 아파 죽겠는데 도대체 누가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거지?
재킷 오른쪽 안주머니에 있던 지갑을 빼갔다가 다시 넣어주는 게 느껴졌다.
어 이제 정신이 드세요?
내가 정신을 차리자 왼쪽 주머니를 뒤지던 청년이 깜짝 놀라며 후다닥 나에게서 멀어졌다.
괜찮으세요?
벌떡 일어나 가는 나를 보며 옆에 함께 지켜보던 청년과 가래 낀 목소리 청년은 기분 좋은 미소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청년들이 내 돈을 탐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렸거나 몰래 돈만 빼가면서 나를 깨워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게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핏줄이 바짝 섰다.
내가 좋아하는 광석이 형 노래처럼 거리에서 먼지가 되어 버릴 뻔했잖아!
지갑 속에는 시골에서 부모님이 보내준 그달 용돈 20만 원 중 술값으로 3만 원을 쓰고 남은 17만 원이 들어있었다. 어찌 보면 17만 원에 내 생명을 다시 리셋 한 셈이다. 너무나도 싼 가격이라며 팔을 번쩍 올리며 기뻐했다.
도둑이었지만 도둑이 아니었고 생명의 은인이 아니었지만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래 맞다. 아마 그 청년들은 할아버지가 보낸 도둑의 탈을 쓴 생명의 은인이었던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