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두 번째 주마등

by 주마등

여보세요?

어 잤어? 아 미안 다음에 할까? 아 괜찮아? 어 고마워.

아니 별일은 뭐.... 나야 맨날 똑같이 지내지. 뭐.. 어 너도 잘 내지?

아 뭐 다른 건 아니고 그냥 연말이 돼서 그런가 추워서 그런가 살짝 우울하기도 하고 해서 술 한잔 했어

약? 어 약은 여전히 먹지 많이 좋아졌어.

아냐. 이제 그런 생각은 안 해. 정말로 어... 고마워. 다 네 덕분이지


아니 뭐 다른 건 아닌데. 어제 꿈을 꿨는데...

아니 춤을 춘 게 아니고 꿈 말이야 잘 때 꾸는 거 꿈꿨다고. 응.. 맞아 꿈


평소에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꿈을 꾸거든?

그게, 어 살아계시다는 게... 꿈속에서도 그냥 평소처럼 아버지가 옆에 계시다고 자연스럽게..

어.. 그냥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꿈에서 깨면 그런 거 있잖아.

아 맞다 나 아버지 안 계시지... 하는 거... 슬프지만..

그래도 꿈에서라도 아버지 얼굴 한번 봐서 정말 좋았다 뭐 이런 느낌? 여전히 보고 싶으니까


로또사라고? 로또는 개뿔 번호 한번 알려준 적 없으셔, 웃기만 하시던데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전에는 꿈속에서 아버지가 보이고 막 그랬었는데

어젯밤에는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내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제사를 지내러 가고 있더라고.

꿈에서 깼는데 이제 그게 너무 슬픈 거야. 이제 무의식에서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인정하게 됐나 봐.

내가...내가.. 어...

꿈에서도 이제 살아있는 아버지 얼굴을 다시는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다시 우울해졌던 거 같아

약? 먹었다니까. 그렇게까지 우울하다기보다

이제 정말 끝인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내 머리가 아버지 돌아가신걸 드디어 인정했나 싶기도 하고.. 인체의 신비 뭐 그런 건가 하하,


어? 그렇지 벌써 10년 넘었지. 한 12년 된 거 같은데. 오래되긴 했지.

맞아.. 그때 네가 장례식장 나 정신없을 때 정말 많이 도와줬는데. 고마웠어... 아 그렇지.. 새삼스럽게 하하...


아 내 말은 근데 이제야 내가 아버지 가신걸 인정하게 됐나 싶네.

내가 아버지를 잊은 거 같아서 죄송한 거 같기도 하고 말이야. 아직도 거의 매일 생각하거든.

너도 알잖아.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날에 내가 아버지한테 소리치고 화내고 짜증 내고 그러다가 전화 확 끊어버린 거.

그래 알지 내 탓만은 아니라는 거 그래도 마지막 전화인 줄 알았으면....

내가 잘못했고, 너무했지 뭐.. 어 알아.. 그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건 알지만, 그랬던 거지 뭐.


누굴 탓하겠어.

이미 지나가버린 건데... 그래 고마워


아 그래 내일 또 새벽에 일 나가야 하지? 미안 너무 오래 전화한거 같.

그래 들어줘서 고마워. 아냐 너한테 말하고 나니까 좀 시원하다

속이 좀 답답했었거든. 이제 아버지 얼굴도 가물가물한데 꿈속에서도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좀 그랬나 봐


어 그래그래, 늦은 시간 정말 미안하다

잘 자고 담에 소주 한잔하자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들어가. 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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