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주마등
아이가 잠꼬대가 조금 심해서요
엄마는 의사에게 아이의 증상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애가 밤에 잠을 자면서 하루종일 있었던 얘기를 하는 거예요. 처음엔 누구랑 이야기하는 줄 알고 방에 들어갔더니 아침부터 밤까지 있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거예요 중간에 깨워도 봤는데 아이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잠들면 그 뒷이야기부터 다시 시작을 해요. 분명히 잠은 들은 상태거든요
처음엔 아이가 친구랑 어떻게 놀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게 되니까 은근히 재미도 있어서 저도 옆에서 듣다가 잠들곤 했는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계속되니까 걱정이 되네요
의사는 어릴 때 아이들은 수면 시 뇌의 활성화 단계의 변화가 어른보다 굉장히 빠르고, 많은 양의 정보를 뇌가 처리하는 과정에서 언어중추가 과도하게 발달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고 했다. 또한 깊이 잠이 들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으니 수면제등 처방전을 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의사가 괜찮다고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는 말을 듣고는 조금 안심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은 받아온 약을 꼬박 챙겨 먹이고 아이를 일찍 잠자리에 들게 했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자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엄마 다리가 아파요. 다리가 너무 아파요 하면서 오른쪽 다리를 쩔뚝거리며 방을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너무나 놀란 엄마는 다급하게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며 이야기했다.
왜 왜 무슨 일이야? 어디 다친 거야? 어디 봐봐, 어디가 아픈 건데
한참을 쩔뚝거리던 아이는 일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침대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픽 쓰러져 다시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들고 나서도 엄마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고
잠든 아이의 오른쪽 다리를 다시 천천히 살펴보았으나 큰 외상은 없었다.
가뜩이나 잠꼬대로 병원에 다녀온 터라 아이가 스트레스가 있었나 보다 하고 엄마는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이가 학교에 등교 전 어제 일을 물었으나 아이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고 다리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엄마는 바쁜 아이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학교로 등교시키고는 집안일을 시작했다.
아이의 1교시가 시작했을 9시 무렵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철이 어머님 되시죠? 아이가 교통사교를 당해서 지금 근처 병원이에요.
이게 무슨 일인지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에 치마도 제대로 못 걸치고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가보니 아이는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이었다.
오늘은 붓기가 심해서 바로 깁스를 진행할 수 없고 하루이틀 지나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엑스레이 상으로는 뼈가 세동강이 났는데 다행인 건 조각이나 어긋남이 없이 깨끗하게 부러져서 수술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입원하시고 내일 다시 한번 검사해 보시죠
밤새 부러진 뼈의 통증으로 잠 못 자는 아이의 고통을 엄마는 함께 느끼며 하루를 뜬눈으로 지새웠다.
아침이 되어서야 간신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한시름을 놓았다.
그러다가 문득 어젯밤에 오른쪽 다리가 아프다며 쩔뚝거리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고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
아이가 깼을 때 자초지종을 물으니
아침에 미술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았는데 보통은 선생님한테 손바닥 한 대 맞고 넘어가던 일을 그날따라 왠지 맞기가 너무 싫어서 다시 집으로 준비물을 가지러 오다가 당한 사고라고 했다.
왜 그날따라 맞기가 싫었는데?
선생님이 때리는 회초리가 엄마가 얼마 전에 가져온 초록색 나뭇가지처럼 생긴 거야
엄마는 머리가 순간 띵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쓰레기장 한편에 예쁘게 놓여있는 나뭇가지를 보았는데 색도 특이하게 초록색이기도 했지만 무언가 가져가야 할 거 같은 마음이 동해서 집에 장식이나 해둘까 싶어서 가져왔었다. 아이는 그걸 보고 예쁘다고 집었다가 갑자기 싫다며 울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이가 유별나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일이었다.
엄마는 미신을 믿거나 특별한 종교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너무도 찝찝한 마음에 당장 집으로 가서 그 초록색 나뭇가지를 다시 재활용 쓰레기 장 원래 있던 자리에 두고 왔다.
그날 저녁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 쓰레기 장을 보았는데 마침 그 초록색 나뭇가지를 다른 사람이 집어가고 있는 걸 보았다. 앞동에 사는 할머님이셨는데 가끔 눈인사를 보내시며 지나치던 상냥한 분이셨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잠꼬대를 하지 않았고 병원에서 꼬박 두 달을 생활하고 건강하게 퇴원했다.
할머님은 며칠 뒤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