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주마등
어젯밤 굉장히 큰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동기모임 톡방에서 이번 달에는 토끼가 밥을 산다고 한 것이다.
토끼가? 토끼가 밥을 산다고? 톡방이 난리가 났다.
그 토끼가 어떤 놈이냐 하면
여태까지 우리 동기들 600년 모임에 커피 한번 산적이 없는 자린고비의 대명사였고
심지어 지난 100년간은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었다.
그런 토끼 놈이 밥을 산다니 우리 동기들은 모두가 의아했다.
토끼가 죽을병에라도 걸린 거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우리들 사이에서 나왔다.
밥값을 낼 때면 항상 뒤로 빠져있는다거나
화장실에 30분 동안 숨어있다가 계산이 다 끝난 뒤에 나오는 일이 많아서
우리 사이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때면
“또 토끼네”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니까.
이걸 들은 많은 후세의 사람들이 있다가 없어지는걸
“토끼다” 혹은 “토낀다”라고 쓰기 시작했다.
일주일 뒤 동기 모임날,
그동안 사는 게 바쁘다며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 않던
까투리와 두루미까지 참석을 했으니 이게 얼마나 큰 사건인지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캥거루가 운영하는 아우백에 모인 동기들은
설렘과 궁금함을 동시에 가지고 토끼가 오기를 기다리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었다
오랜만에 본 토끼는 조금은 이전보다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100년 전 보았던 피곤함과 찌듦이 묻어 있던 얼굴과는 반대로 편안하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여우가 모두를 대신해서 물었다.
“토끼야 너 무슨 일 있냐? 왜 갑자기 밥을 산다고 해?”
토끼는 한숨을 푹 쉬더니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예전에 거북이라는 놈한테 뒤통수 맞았던 거 다들 기억하지?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이긴 한데.
600년 전 그때 그 거북이 놈이 나한테 와서 달리기 시합하자고 했었거든.
그 음흉한 웃음을 봤을 때 수상한걸 눈치챘어야 하는데,
바깥수 한병 건네주면서 친근하게 말 거는 것도 이상했는데,
그놈의 말발에 속아서 경주를 시작한 내 잘못이지.
그 바깥수 안에 수면제가 있는 것도 모르고 달리기 시합을 했으니.
어쨌든 달리는 와중에 점점 졸음이 왔고 그만 나무밑에서 쓰러지고 말았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거북이 놈은 결승점을 지난 뒤였고,
나는 내기에서 지는 바람에 1억이라는 빚을 지게 됐지”
다들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세간에는 토끼가 게으름 부리다가 진 걸로 알려져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도 뒤에서 수군수군 거리며 토끼 험담 하기 바빴으니 모두들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기된 얼굴로 토끼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 그렇게 1억의 빚을 지고 갚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악독한 거북이 놈은 매달 사채업자들을 시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어.
너희들도 알지? 그 사채시장에서 제일 잔혹하기로 소문난 박쥐들 말이야.
걔들이 밤마다 조폭들이랑 같이 찾아오는데 정말 그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하고 살았어.
결국 불어나는 이자도 갚지 못해서 난 끌려가게 되었고,
마침내 간을 비싸게 사주겠다는 바닷속 용왕이
경매로 내 간을 2억에 사가게 되었단 이야기를 들었어.
그런데 2억으로 변제를 해도 그동안 불어난 이자는
100년 동안 노역으로 갚기로 했었어.
뭐 정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했던 거 같아.
원양어선도 타보고 카지노에서 2교대로 12시간씩 딜러도 하고 댓글 알바도 하고….”
토끼의 신세한탄을 듣던 노루가 술 한잔 하라며 권했지만
“아 미안 나 지금 간이 없어서 술을 못 마셔. 해독이 안 되네…”
라며 정중하게 사양했다.
“알아 니들이 나 어떻게 생각했는지, 밥 한번 못 사는 내 심정도 참 마음 아팠지만 이 돈을 다 갚기 전까지는 너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내 힘으로 당당하게 이겨내 보고 싶었어.”
모두 코끝이 찡해졌는지 눈시울을 붉히는 동기들이 꽤 있었다.
“ 나 내일 마지막으로 노역하러 달나라에 가.
거기서 절구에 떡 4천만 kg만 다 찧으면
남은 빚이 모두 탕감된다고 하네. 휴. 정말 길고 길었어.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너희들에게 내 모든 이야기를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
토끼는 술 대신에 사이다를 마시며 동기들과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하며 밤을 새워 시간을 채웠다.
캥거루는 오늘 밥값은 자기가 쏜다며 한사코 토끼가 주는 돈을 받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까지 이야기를 하고 동기들 모두 토끼가 타기로 한 보름달행 달TX 역까지 다 함께 배웅을 갔고,
노역이 끝나는 날 함께 모여 축하하기로 했다.
멀어져 가는 기차뒤로 동기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토끼가 돌아올 때 토끼의 간을 사서 선물하자는
회장 원숭이의 말에 모두가 흔쾌히 찬성을 했고
카카호호 뱅크 계좌에 자동이체를 걸었다.
들어보니 지금도 토끼는 빚을 갚기 위해
달에서 떡절구를 열심히 쿵더쿵 덩더꿍 빻고 있다더라.
달에는 토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