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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윤 Jul 07. 2019

제3장. 관계를 방해하는 감정_의심

의심은 관계를 방해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의심을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나를 믿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더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면 기분 나쁜 마음이 먼저 드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에 가까운 생각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의심한다는데 기분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흔히 연인 사이에 다음과 같은 의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편과의 연애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사람을 잘 믿는 편이라 그런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부터 남편에 대한 마음을 열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편은 나를 아직 다 믿을 단계가 아니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왜 나를 믿지 못하는 걸까? 내가 미심쩍게 행동하는 부분이 있었나?’라고 생각하며 기분은 조금 상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믿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했다. 사랑한다는 표현도 더 많이 하는 등 여러 가지를 실천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아직 우리 관계는 2%가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들 같으면 상당히 기분 나쁘게 들었을지도 모르는 이 말을 나는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결과, 관계에서 타인에 대해 습관적으로 경계하고,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이 사람들이 사람을 경계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가진 성향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람에게 크게 데여 다시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그럴 수도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 나의 마음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했던 이유는 과거 연애에서 크게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에 대한 배신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온전하게 나에게 마음을 터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관계에서 받을 상처가 두려워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던 남편의 의심이 오히려 본인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남편의 의심은 우리의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의심과 전적으로 믿지 못하겠다는 말들은 나에게 상처로 돌아왔고, 이는 결과적으로 나 또한 남편을 믿지 못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꼴이 되었다. 의심은 의심을 낳을 뿐이다. 내가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상대를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한다고 해서 내가 상처를 덜 받지도, 상대가 나를 더 믿어주지도 않는다. 또한 남편은 아직 확실히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의심을 했다. 




 그런데 상대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매번 타인을 의심하며 관계를 형성해간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아마 한 사람을 만나는 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관계는 가설 설정과 결론 도출로 설계되어 늘 같은 결과가 예상되는 실험이 아니며 ‘①이 사람을 만나도 된다 ② 안 된다’로 나뉘어 정확한 답이 있는 객관식 시험지도 아니다.


 여기에서 ‘확실히 아는 것’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을 해보자. 대체 사람을 어느 정도 알면 확실히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이유로 관계 맺기를 거부하고 상대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기본 전제를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어떠한 도구를 통해 객관적으로 측정하여 수치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 사람의 마음은 더 그렇다. 키, 몸무게, 허리둘레 등 외적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간들이 정한 통일된 단위에 의해서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수치화하여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다. 단순히 키, 몸무게, 생년월일, 사는 곳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정확히 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측정할 수도 없는 타인의 마음을 굳이 확실히 알지 못한다고 해서 관계 맺기를 거부하고 마음의 벽을 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지인 M은 어렸을 적, 같은 반 친구이자 동네 친구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그 기억은 그녀에게 큰 상처로 남았고 이후 관계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M은 그 이후로 친구들을 폭넓게 사귀며,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지냈지만, 평범해 보이는 관계는 아니었다. 혹시나 상대가 날 배신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진심을 터놓지 못했다. 그녀는 ‘마음속에 남들 모르게 감추려고 하는 돌덩이 하나’가 늘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아픈 기억과 이로 인해 야기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자아상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장애가 된다. 마음의 상처는 마음속에 꽁꽁 숨겨두는 방법으로는 절대 아물지 않는다. 방치하면 방치할수록 덫 날 뿐이다. 거짓된 관계를 형성하면 할수록 마음속 공허함만 커지게 된다. 이전의 관계에서 받았던 상처를 현재의 관계에 고스란히 가지고 오게 되면, 힘들어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인생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매번 실전이라 생각하고 어떤 일에 도전하지만 큰 인생의 그림을 통해 본다면 ‘실전과 비슷해 보이는 연습’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매 순간 완벽할 수 없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매 순간 모든 사람을 확실히 알아서 내가 원하는 이상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질 때만 관계를 맺고, 그렇지 않을 때는 관계를 거부하는 일들은 오히려 소모적이며 비효율적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며 사람에 대해 더 통찰하고 나에게 맞는 관계 스타일을 깨닫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다. 좋은 관계인 사람은 그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관계 자체가 좋았다는 말이 맞다. 마음의 문을 열고 잘 지내보고자 하는 상대를 향해 기준치를 낮춰 다가가는 것이 마음의 상처를 받아 마음의 문을 닫고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영위하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만약 마음속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보자.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피하기보단 내가 먼저 손을 내민다면 관계는 분명 좋아질 것이다. 타인을 믿지 않겠다는 것은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뜻과 같다. 관계를 잘 맺고자 한다면 의심부터 한다는 것은 배제해야 할 것이다.


 물론 물질적 거래를 위해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의 말까지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순수한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돈이 오가므로, 적당한 의심을 통해 이해득실을 고려해야 하며, 아닌 것은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일반적인 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해 지나치게 의심을 할 경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의심은 마음의 벽을 쌓는 행동이고, 그것은 결국 소통의 장애로 다가온다. 이는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이자 방해꾼이다. 지금부터라도 상대를 의심하기보단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개방적인 자세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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