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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봄여기 Sep 16. 2018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아무튼, 글쓰기> 로 시작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p.97 '우리는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중에서 <문맹>)

오늘 <아무튼, 글쓰기>의 첫 시간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으로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글쓰기>를 구상하고,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문맹>은 그 중심에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문맹>을 읽으며 글쓰기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상실했던 나를 되돌아보고, 의미있는 글이 아니면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저의 오만함을 깨달았습니다. 도대체 대관절 의미있는 글이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이 의미있길 바라지만, 어떻게 무엇으로 의미있어야 하는지 모호하기만 합니다. '의미있는'이라는 수식을 앞에 세우는 순간 왠지 지금의 삶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 같고, 우리가 쓰는 글들은 무분별한 단어의 조합처럼 무의미해져 버리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무력감, 상실감은 어쩌면 '의미있어야 한다'라는 강박에서 오는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건 바로 저 문장을 만났을 때였습니다. 누군가의 관심을 끌지 못해도, 설사 그것이 책으로 출간되지 않더라도, 의미있음이 아닌 무용한 것일지라도 "무엇보다도,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 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 말은 다시 이렇게도 들렸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사랑받지 않아도, 관심을 끌만큼 매력적이거나 활동적이지 않아도 무엇보다, 당연하게, 가장 먼저 할 일은 너의 삶을 사는 것, 너의 시간을 견디는 것, 너의 가장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각자 마땅히 해야 할 일,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면서 또 그것을 견디는 것, 그 속에서 각자가 가장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 의미있는 삶의 추구라면 어쩌면 이보다 더 의미있는 삶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나의 가장 할 일, 지금 이 시간들의 의미있음과 없음의 유무를 따지느라 놓아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아고타 크리소트프에게는 그것이 "글쓰기"였고, 어린 시절 경험한 세계 2차대전과 헝가리 혁명을 통해 그녀가 겪고 보고 들은 것들은 모두 그 글쓰기의 일환으로 작품이 됩니다. 그녀의 자전적 경험들이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과 같은 아름다운 문학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가장 할 일인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업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신체 훈련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훈련들은 어렸을 때 우리, 오빠와 나, 혹은 친구와 내가 하던 훈련을 떠올리게 한다. 침묵하는, 움직이지 않는, 굶는 훈련.......


<문맹>,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비밀노트>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비밀노트>에는 이와 비슷한 훈련을 하는 형제가 나옵니다.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전쟁이 발발하자 어머니에 의해 외할머니집에 맡겨집니다. 외할머니는 시도때도 없이 쌍둥이 형제를 핍박하고 구박하고 굶깁니다. 마을 사람들은 사생아, 마녀의 자식이라며 쌍둥이들이 지나갈때마다 욕을 하고 발길질을 합니다. 형제는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신체단련'이라는 명목으로 서로를 때리고 상처입힙니다. 할머니의 구박과 마을 사람들의 폭언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서로에게 욕을 하면서 '정신훈련'을 합니다. 굶는 것으로 더이상 모욕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굶는 훈련도 하지요. 어린 아고타 그리스토프가 자신의 오빠 혹은 친구와 함께 세계2차대전 발발 이후 맡겨진 기숙사에서 했던 훈련들이 이와 같은 문장들의 모티프가 된 것입니다. 글쓰기의 가장 좋은 소재는 바로 '나'이고, '나'를 쓰다보면 나와 연관된 '너'를 쓰게 되고, '너'에 대해서 쓰다보니 나와 당신이 속한 우리에 대해서, 더 나아가 우리가 속한 사회와 세계에 대해서 쓸 수밖에 없게 되지요. 이렇게 우리들의 글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무튼, 글쓰기>의 첫 시간은 '유년의 트라우마'가 주제였고, 우리는 저마다 어린 크리스토프가 되어 폐렴에 걸린 아버지와 마음껏 스킨십을 할 수 없었던 어린 딸의 시간을 추억하고, 어린 시절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이별하게된 이십대 취준생의 새벽녘처럼 서늘한 고통을 잠시 엿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각자의 이야기이면서 서로의 이야기였고, 아직 누군가의 흥미를 끌만큼 재미있지도, 문학적으로 위대한 작품도 아니었지만 크리스토프의 저 말처럼 의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쓰기로 했습니다. 쓰는 것이 곧 ‘나’이고, ‘당신’이고,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수업이 끝나고도 우리는 1시간을 더 이야기했고 정말 의미있고 고마운 시간이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 고마움과 응원이, 지금 여기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무튼, 글쓰기>의 존재 이유입니다. 다음주에도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첫수업 함께 해주신 분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번 수업때 함께하지 못하셨던 분들은 다음 수업때 더 좋은 커리큘럼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의미있든 없든 당신의 글쓰기, '삶'이라는 당신의 작품을 지지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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