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학힐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봄여기 Oct 04. 2018

요즘 당신이 느끼는 공포는 무엇입니까?

독립출판물 FACADE <공포>, 아무나하나 출판사.

‘불안’은 나의 오랜 병이자, 글쓰기의 원동력이었고, 관계의 근원이면서 문학치유의 근본 토대로 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놓을 수 없었고 놓아지지 않았던 주제이다. 소설 창작의 기저로서의 불안이라는 주제로 올해 초 석사학위를 받기까지 불안은 한시도 나의 관심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불안을 통한 불안의 극복. 아직 이론이라 할 것 없이 빈약한 나의 주제의 사상적 토대는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에 있다. 불안과 공포, 이 샴쌍둥이같은 단어들에 집중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을 거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공포의 대상, 즉 “두려운 것”은 그때마다 손안의 것, 눈 앞의 것, 공동현존재의 존재양식을 가진 세계내부적으로 만나게 되는 어떤 것이다.(p.195)

불안은 그것 앞에서 자기가 불안해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p.254)

<존재와 시간>


하이데거는 꽤 정밀한 작업을 통해 공포와 불안의 차이를 설명한다. 특정한 대상과 위협으로 두려운 것이 되어 나를 덮친다면 그것은 ‘공포’로, 특정 대상없이 섬뜩함으로 어느 날 불현듯 나를 사로잡는다면 ‘불안’으로 드러난다. 하이데거의 이와 같은 공포와 불안에 대한 해석에 나는 깊이 매료된 적이 있다. 불안이라는 주제를 갖게된 시초이자 지금까지도 내 작업의 모든 근원으로써 불안이 존재하게된 계기가 된다. 근데 나는 왜 ‘공포’가 아니라 ‘불안’에 매료된 것일까.

정면을 뜻하는 Facade 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갖고 있는 이 책은 공포의 이면을 향하고 있다. 독립출판물에 흥미를 못 느끼던 내게 이 책은 강렬한 충격과 신선함을 선사한다. 도발적인 책표지와 훅(hook)적인 질문.


요즘 당신이 느끼는 공포는 무엇인가요?


요즘 내가 느끼는 공포에 대해서 적어보려 하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공포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그 ‘유난함’이라 표현되는 공포의 현상들에 공감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이기 때문에 갖게 될 수밖에 없는 밤길이나 묻지마 폭행 같은 류의 걱정은 나 또한 있지만 이것이 극도의 강렬한 두려움과 공포는 아니었으므로, 그것을 공포라 여기는 사람들을 유난함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공감해야할지 아니면 스스로 유난함을 자처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모든 세세하고 세밀한 공포는 저마다 이유의 격차가 커서 그것을 유난하다, 예민하다의 평가나 공감의 문제로 바라보기 보다는 원인에 대한 이해와 치유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성 있어 보인다. 공감하진 못해도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이해해볼 수는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타인의 공포에 공감해야 한다는 건 또다른 정서적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사람들의 공포가 여기에 있다. 미래에 대한 공포부터, 사람에 대한 공포까지 가지각색의 공포가 때론 불안처럼 보이는 공포와 혼용되어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불안의 대상이 없으므로 불안한 존재의 그 불안은 여전히 이해가 되는데 도대체 이렇게 다양한 대상으로 함축되고 표현되는 공포는 자꾸만 그 대상으로부터 물러서게 만든다. 불안에 처한 존재는 반성적인 사유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지만 공포를 느낀 존재는 그 대상 앞에 그저 경악하고 놀란 상태로 얼어붙는다. 공포의 대상은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제거되어야 극복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보다 불확실한, 예측되지 않는 존재의 불안이 나는 훨씬 공포스럽다. 공포가 내게 ‘멈춤’의 사유라면, 불안은 ‘앞으로 나아감’의 사유다. 공포가 경악과 놀람으로 나를 정지 상태로 멈춰세운다면 불안은 섬뜩함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그련면에서 공포가 혐오를 동반하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해 보인다.

‘식탁위의 공포영화’의 마지막장. 색과 이미지를 통해 유명한 공포 영화를 표현하는 챕터인데, 위의 색상표와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Facade <공포>편에선 불안이 공포로 둔갑해 혼용되어 쓰인 예가 적지 않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밤길에 대한 공포와 같은 의미로써의 공포로 정의되는 건 아쉬운 점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엄연히 다른 층위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공포라는 키워드로 묶여있어 개념의 혼란을 준다. 공포를 말하고자 하는지 불안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호하다. 존재적 불안과 혐오의 대상으로서의 공포는 분명 구분되어 쓰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같이 쓰이고 있어 혼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다양한 타인들의 공포를 이해해보고 유추해볼 수 있는 ‘공포학 개론서’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특이하고 재미난 구성이다. 문학치유 텍스트로 쓰일 좋은 아이디어도 갖고 있다. 공포에 대한 이론적 토대가 좀 더 명확하고 깊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흥했으면 좋겠다.


Facade <공포> / 오지수 이지현 / 아무나하나amunahana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