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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봄여기 Oct 22. 2018

차가운 심장 같은 세계 속 존재들을 향한 연민

'시로 표현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 허수경의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허수경 시인의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을 대상텍스트로 <아무튼 글쓰기> 3주차 수업을 진행하고 4일 뒤 허수경 시인의 타계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도 한국에 오기를 거부하고 그 누구의 방문도 받지 않은 채 독일에서 영면의 세계로 떠난 시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겸허해집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생의 절반을 보내며 독일인도 한국인도 아닌 존재로 살아간 시인의 삶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따듯한 위로가 주는 고마움과는 다른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폐허처럼 황량한 곳에서도 오롯이 홀로 우뚝 서서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도 같은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이번 시집을 읽으며 누구는 대면하지 못했던 우울함과 마주할 수 있었다고 했고, 누구는 모르고 잘 살았던 결핍들과 대면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접하는 시집으로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났을 때 각자가 직면해 있는 현실과 맞닿는 지점을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이야기 했습니다. 같은 시집을 읽었지만 제가 받은 위로와 다른 사람들이 받은 위로는 분명 달랐습니다. 시인의 삶과 시적 세계, 우리의 삶과 현실적 세계가 연결되는 지점은 각자 저 마다 다 달랐기에 흥미로웠습니다. 그 다름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이번 수업의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집의 제목이자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차가운 심장’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어서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사전적 정의의 심장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이미지 대신 심장이 움직이는 모습을 gif로 만들어 놓은 위키백과의 놀라운 기술에 의하면 심장은 보통 사람 주먹만한 크기이고, 80000km 이상 되는 혈관을 날마다 쉬지 않고 순환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인체를 살아있도록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심장의 기능과 구조에 대해서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도 모니터 안의 심장gif는 성실하게 팔딱입니다. 금세라도 붉은 피가 모니터 밖으로 펌프질 되어 튀어나올 것은 심장에 손을 대어보지만 모니터의 차가운 촉감만 전해질 뿐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차가운 심장이란 이런 느낌일까요?

  이 시집은 살아있지만 죽은 듯 보이는 차가운 심장 같은 이 세계에 대한 ‘빌어먹을, 연민’을 느끼게 만듭니다. 뜨거워야 할 심장이 차가워졌으니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아직 심장이 제 기능을 멈춘 것은 아니니 죽었다고 말할 수 없는, 모니터 속의 심장 gif처럼 살아있는 듯 보이나 죽은 듯 살아가는 이 세계 속 존재를 의미하는 것도 같습니다. 90년대 초반 무작정 홀로 독일로 떠난 시인은 그곳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며 한국에는 세 번 정도 밖에 오지 않았을 정도로 철저히 타향민 신세를 자처합니다. 완벽한 타지에서 철저한 타인으로 그녀가 언어로 엮어낸 이 아름다운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은 빌어먹게도 사랑해야만 하는 혹은 사랑해야 하지만 사랑하지 못해서 슬픈, 때론 살아가고 있지만 죽은 듯 보이는 존재, 그래서 다른 존재의 죽음을 먹고 살아야만 하는 숙명과(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일 한 때는 살아있었던 식물 혹은 동물의 사체를 먹음으로) 죽음을 통해 생명으로 환원하는 이 세계의 경이로움을 감내하게 만듭니다.


언어
자연
과거
여기에서 놀았다
「여기에서」(16)

   시인의 관심은 눈앞의 현상에서부터 존재의 근원으로까지 나아갑니다. 존재와 세계, 생명과 죽음, 인간과 자연, 존재와 탈존재, 인간이면서 카라쿨양(「카라쿨양의 에세이」)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그대’없이 ‘자연’이 된 “여기에서” 우리는 “더러는 햇빛처럼, 더러는 빗물처럼” 그렇게 여기에 있다가 없다가 했던 존재들로 이야기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전복적인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인간이 이 세계를 발전시키고 이롭게 하는 것인지, 인간이 인간답게 인간임 내세워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과 자연을 파괴해야 하는지,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몇 백 년 전의 백인장교와 “말 못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빌어먹을, 차가운 심장」(132)) 말하던 근현대의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다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아직도 우리들의 폭력에 대해서 정당화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이, 도시화가, 기술의 편리함이 우리를 과연 더 나은 미래와 행복으로 이끌어 줄까요? 시인은 「아직도 해가 뜨지 않아서」를 통해 태어나야 했지만 태어나지 못한 것들을 발전의 역사 앞에 데려다 놓습니다.

가만히 종이를 내놓고 너를 그려본다
너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하여 그려본다

너의 얼굴 자리에다가 기타를 그려넣는다
너의 코에다 입에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음악을 그려넣는다
아, 너의 얼굴은 음악을 기다리는 기타가 되어 있다

이 종이를 아주 푸른 물결이 있는 곳까지 가져가야겠다
순정의 입술로 태양이 가만가만 젖은 눈을 만져주던 물결에게로
그리고 이 세기가 끝나면 내 차가운 심장을 너에게 주리

하얀 입김을 달리던 배와 기차가 있었던 세기에
달리는 모든 것을 믿어서 대륙을 횡단하던 모험가와 군인들과
새로 태어난 기계들과 기계 옆에서 가난한 감자를 먹던 여자들의 입속까지
다 음악으로 만들고 나면 너의 얼굴이 태어나겠지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긴 밤의 바람을 듣는다 바람의 순간마다 새로
태어나는데 우리들은 아직 긴 발을 가진 신의 무르팍에 기대어
졸고만 있다 전 세기의 모든 순환을 다 경험한 횡단철도의 철로들이
마지막 숨을 쉬면서 이슬에 젖는데

나는 태어나지 않은 음악을 너의 얼굴로 가만 들여다보려 한다
「아직도 해가 뜨지 않아서」 전문

   태어나야 했지만 “태어나지 않은 음악” 대신 “하얀 입김을 달리던” 배와 기차, “새로 태어난 기계들”과 “횡단철도” 사이에 “가난한 감자”를 먹던 여인들이 태어납니다. 자연을 훼손하고, 동물을 죽이면서 인간마저 소외시키는 폭력으로 태어난 이것은 인간의 욕망과 탐욕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며 순환하다 어느덧 역사가 되고 시인은 이것마저도 음악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언젠가는 음악이 될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태어날 “너의 얼굴”을 그리며 말입니다. 우리는 이 시 위에 자신의 서사를 덧붙임으로써 ‘나’라는 도화지에 ‘너’라는 서사를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이 시는 각자의 이야기로 어떻게 변했을까요?

   태어나지 못한 음악은 “너는 나였고, 세상 속 하나의 존재”로, “소리치지 못하는 나의 해”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그 날의 서사가 각자의 이야기와 만나 사랑의 시가 되고, 자신의 숨은 자아에게 말을 건네기도 합니다. 시를 이해해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직접 써보고, 시인의 말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여 보면서 각자의 자기가 직면해있는 문제의 근본에 조금씩 다가갔습니다. 시를 읽고 이해하고 시인의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은 체험이지만 그 시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모른척했던, 불편했던 무언가에 닿는 경험을 만드는 것도 문학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가 문학힐러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더 이상 이 세계에 없지만 시인의 언어와 생각은 시집으로 남아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쩌다 여기 이 시간 속에 당신과 있는 것처럼. ‘차가운 심장’같은 세계에서 스스로가 저지른 폭력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미를 죽이고, 아이를 죽이고, 현금을 강탈하고, 여자를 강간하고, 외국인을 살해하고, 자연을 훼손하고, 동물을 죽이면서 여기, 저기에서 살고 있는 세상에서 삶이 죽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에도 시인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인류!
사랑해!
울지 마! 하고
(삶이 죽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처럼」(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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