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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봄여기 May 27. 2018

함께함, 그 관점의 차이.

<운명과 분노 Fates and Furies>로 바라보는 문학치유.

"타인을 견디는 것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어떤 것이 더 난해한가?"
(허은실 '목 없는 나날' 중)

혈연관계가 아닌 완벽한 타인이 가족으로 묶이는 일, 함께 해야 한다는 무수히 많은 이유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타인과 타인과의 합법적인 결합, 우리는 그것을 '결혼'이라고 부릅니다. 결혼은 "서로 다른 부분들이 만나는 결합"(p.16)이지만 '더해지고 더해지는 합이 아니라 거듭제곱으로 나타나는 지수(p.590)'입니다. 결혼을 단순히 '결합' 혹은 '사랑의 완성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측할수 없고, 언제나 동시에 같은 합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에 결혼은 결국 '관점의 차이' 속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죠. <운명과 분노>는 스물 두 살에 결혼하게 된 로토와 마틸드의 평생의 삶을 통해 이러한 결혼의 관점 차이를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반은 로토의 관점으로, 그 반은 마틸드의 관점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두 사람은 한 파티에서 만나 첫 눈에 반해 즉흥적인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로토는 생각합니다. '우리를 닮은 아이는 이쁘겠지'라고. 마틸드는 생각하죠. '드디어 집이 생겼어!' 라고.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의 문제. 태양의 위치에서 보면 결국 인류란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는 그저 회전하며 깜박거리는 빛일 뿐이다. 가까이서 보면 도시는 다른 매듭들 사이에 위치한 하나의 빛의 매듭이고, 더 가까이서 보면 건물들이 서서히 분리되고 희미한 빛을 뿜는다. 새벽녘의 창문에는 변함없이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구체적인 것은 한 곳에 초점을 맞출 때에만 보인다. 콧구멍 옆의 점, 잠자는 동안 건조해진 아랫입술에 들러붙은 치아, 겨드랑이의 종잇장 같은 피부."(p.69)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거리를 두고 보면 모든 것은 하나의 웃지못할 헤프닝 혹은 한 낮의 여유로움, 아름다운 추상적 이미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까이서 볼 것인지, 멀리서 볼 것인지에 따라 각자의 의미들이 생겨나겠죠. 그 의미가 많아질수록 추상적인 것은 점점 구체화되고, 평범했던 것들은 소중해지기도 합니다. 결국 내가 바라보는 것들의 방향이 내 관점을 결정짓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관점은 태생적으로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 내가 사랑하고 싶은 대로 사랑하는 것. 그 속에 악의가 없더라도 때때로 우리는 수많은 상황속에서 상대의 배려가, 상대의 이해가, 상대의 무심한 행동과 말이 상처가 되고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로토에게 결혼은 하나의 또다른 가족이 생기는 과정이자, 아무리 먹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향연"(p.94)이었다면 마틸드에게 결혼은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가족을 얻는 과정이자, 오랜시간 자신을 어둠속으로 이끌었던 외로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습니다. 마틸드를 만나기 전 로토의 삶은 부모님의 따듯한 사랑, 건강하고 아름다운 외모, 부유한 재력 등이 '운명'처럼 그에게 주어져 있었죠. 그는 '빛' 가운데서도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었습니다. 반면 마틸드는 어린 나이에 가족에게 버림받았습니다. 버림받은 그녀를 돌봐준 '삼촌'은 그녀에게 집과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었지만 가족이 되어주진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와주는 운전사 외에 대화를 나눠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독한 외로움 속에 놓이게 됩니다.

한번은 강에서 수영을 하는데 거머리 한 마리가 그녀의 허벅지 안 쪽에 붙었다. 그 부위가 중요한 곳에 아주 가까워 그녀는 짜릿한 전율까지 느꼈고, 그래서 거머리를 거기 그대로 둔 채 며칠 동안 온종일 그 생각을 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친구였다. 샤워를 하는 중에 거머리가 떨어져 그 사실을 모른채 밟아버렸고, 그녀는 울었다.(p.400)

마틸드에게 친밀함이란 '거머리'를 통해서라도 느껴보고 싶은 추상적인 형태의 사랑이었고 그렇게라도 가져보고 싶은 따듯함이었습니다. 비틀리고 왜곡된 그녀의 친밀함에 대한 갈망은 그녀와는 달리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 사람, 사랑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 '로토'와 가족이 되는 것으로 귀결되죠. 마침내 모든 반대와 미심쩍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그와 결혼합니다. 그와의 만남에서부터 결혼까지 계획적으로 준비했던 마틸드와는 달리 로토는 그 모든 것을 운명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죠. 운명같은 만남 속에서 시작된 찬란하고 황홀한 사랑, 더할나위없이 완벽하고 든든한 마틸드의 사랑을 받으며 그는 극작가로 성공까지 합니다. 마틸드는 로토에게 따듯하고 안정적인 가족이 되어주기 위해 자신과의 결혼으로 경제적인 원조를 끊은 로토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모욕적인 언사를 혼자서 감내하고, 옛연인에게 일자리를 청탁해 경제적인 활동을 하며, 로토가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도록 어머니처럼 보살피고, 먹이고, 위로합니다.

차가운 태양 아래 아직 얼어 있는 진흙에서 천남성류 식물이 코를 내밀었다. 로토는 누워서 세상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로토는 누워서 세상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결혼한 지 십칠 년째였다. 그녀는 그의 가슴속 가장 깊숙한 방에서 살았다. 그 말은 가끔 말티드보다 아내가 먼저, 그녀라는 존재보다 배우자가 먼저 떠오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본능적인 존재에 앞서 추상적인 면이 먼저 떠오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베란다로 걸어오는 순간, 그는 마틸드를 보았다. 그녀의 중심에 자리한 어두운 채찍. 그녀는 어떻게 그 채찍을 그토록 부드럽게 휘둘러 그를 계속 움직이게 할 수 있었을까.(p.157)

이와 같은 마틸드의 사랑은 로토에게 예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마틸드에게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 로토는 어렴풋이 마틸드의 어두운 내면을 알아체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럽기 때문이죠. 로토는 자신의 사랑에 너무 취해서 마틸드의 중심에 깊게 자리한 그 '어두운 채찍'의 근원이 무엇인지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가 향유한 '아무리 먹어도 배부른 향연'과도 같은 결혼 생활이 마틸드의 불안, 염려, 외로움, 헌신, 분노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을 몰랐습니다. 몰랐기에 그는 극작가로 성공한 뒤 한 강연에서 이와 같은 말로 마틸드의 분노를, 아니 이 책을 읽는 전세계의 여성의 분노를 사고 맙니다.

"아내들은 훨씬 나은 존재입니다. 더 친절하고, 더 관대하고, 두루두루 더 뛰어나죠. 삶을 매끄럽고 깨긋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일에는 고결함이 있습니다. 아내로 살겠다는 선택은, 적어도 생계를 위해 자기 탐닉적인 성찰에 빠지기로 하는 선택과 동일합니다. 아내란 결혼생활을 창작하는 드라마투르그예요. 기여한 바가 곧바로 인식되는 일은 없지만 아내가 하는 일은 그 결과물에 핵심적이죠. 이 역할은 영예로운 겁니다. 제 아내 마틸드만 보더라도, 제 일을 더 매끄럽게 관리하기 위해 예전에 자기 일을 그만뒀습니다. 아내는 요리와 청소와 제 원고를 교정하는 일을 아주 좋아하고 그런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아내는 가정을 창작할 수 없으니 모자란 존재라고 거들먹거릴 수 있겠습니까?(p.257)"

강연에서 로토는 여성작가들 뿐만 아니라 좌중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고, 젠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작가로 비난받게 됩니다. 비난은 아내라는 성 역할의 한정과 성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문단에서 여성작가가 남성작가보다 적은 이유에 대한 대답으로 '창작의 창의적인 에너지를 여자는 내부에서 찾고, 남자는 외부에서 찾기 때문'이라는 최악의 말로 대응해버리고 말죠. 좌중은 점점 분노하고, 마틸드는 강연장에서 사라집니다. 요리와 청소, 원고를 교정하는 것을 좋아했던 마틸드의 결혼생활은 어땠을까요?

나름의 원칙도 세웠고 요령도 부렸지만 그녀는 어느새 아내가 되어버렸다. 우리 모두 잘 알듯 아내란 눈에 띄지 않는 존재다. 결혼생활에서 밤의 요정 같은 존재. 시골에 있는 집. 도시에 있는 아파트, 세금, 강아지 모든 걱정은 그녀의 몫이었다. 그는 마틸드가 그녀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다. 자식이 있었으면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또 이런 것도 있었다. 그가 쓴 많은 희곡들, 적어도 절반은 그녀가 밤중에 혼자 몰래 그의 방에 들어가 그가 쓴 것을 더 좋게 고쳐 쓴 거라는 사실.(다시 쓴 게 아니라 교정하고 윤문하여 더 빛나게 했다.) 그녀는 또한 그의 작업에 관련한 비즈니스를 맡았다. 그가 벌어들이는 모든 돈이 그의 선의와 게으름 때문에 증발해버릴 거라는 공포스러운 장면이 그녀의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이다.(p.376)

마틸드의 시간은 로토가 모르는 시간들로 가득채워져 있었습니다. 로토를 위해서, 로토가 단 한순간이라도 그의 가족을 그리워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누려보지 못한 가정을 그러나 로토는 알고 있을 그 가족의 느낌을 거짓말이라는 악의 힘을 빌려서라도 만들고 지켜냅니다. "혼자 세상에 맞서는 건 지치는 일"(p.528)이었고, 로토는 그녀가 믿고 싶었던 가지고 싶었던 새롭고 따듯한 가족이 되어줄 사랑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계속 인내하고 자신의 진심을 숨깁니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마틸드는 자신의 어두운 공간을 들키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분노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로토에게 "그녀의 큰 사랑과 빛"(p.529) 만 알게 하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게 됩니다.

외로움이 살갖처럼 익숙하고 친숙해 그 느낌 마저 무엇인지 잊을 때가 있습니다. 마틸드는 버려졌고 그래서 혼자서 살아냈고, 분노만이 그녀의 삶을 지탱하고 보호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부정의 낙인으로 여겼고, 태양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 "전쟁은 아주 먼 곳의 이야기인 번영의 시대에, 남자로, 부자로, 백인으로, 미국인으로 태어난 자의 평화로운 잠(p.526)"같은 특권을 누려온 이 남자를 향해 마땅히 분노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단 한명에게도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유일하게 갖고 싶었던 것은 모두에게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로토가 당연하게 누렸던 것에 사이에 있기 때문이었죠.

필자는 이 책을 결혼전과 후에도 배우자에게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지 않고, 결혼생활 내내 상대에 대한 모든 불만족과 서운함에 대해서 표현하지 않고 인내하다 결국은 분노로 폭발해버리고 말았던 사람에게 추천한 적이 있습니다. 상대는 본인이 일 년간 문학치유 상담을 진행했던 친구였고, 문학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인물 중에서 유독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지 않은 채 우유부단한 선택을 하는 인물들에게 과하게 분노를 표출하곤 했지요. 그에게 이 책을 추천한 것은 마틸드를 통해 자신을 분노와 대면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필자에게도 마틸드와 같은 분노와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이와 같은 자기혐오, 분노, 외로움, 불안 등이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알고 있었지만 형체가 잡히지 않았던 내면의 응축된 것들이 소설을 통해 단어와 느낌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은 관계의 어려움,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로 고통을 겪거나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자기혐오로 타인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로런그로프는 "페미니스트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게 만드는 권력 구조를 인식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소설을 페미니즘 소설"(p.603)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만을 위한 이상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페미니즘은 여성, 아이, 장애인, 성소수자들 세상의 권력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좀 더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돕는 학문입니다. 마틸드가 다양한 측면에서 권력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유지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이 소설은 다양한 관점과 시선이 아닌 일방향의 시선, 일방향의 관점, 일방향의 감정 때문에 뒤틀리고 자기혐오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결혼이라는 관점에서 권력 구조를 인지하고 있다면, 당신의 일상에서 일반적인 누군가의 관점 때문에 위협당하고 있다면, 일방적인 자기에 대한 시선으로 극단적인 자기혐오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치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실제의 나와 보여지는 나 사이의 간극을 메우며 살아가는 것이 타인과 나의 간극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면서 동시에 이러한 간극을 무시하거나 모른척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혼자서 외로움을 견뎌내는 것과 타인을 견뎌내는 것 중 어떤 것이 난해하냐고 말이죠. 자, 이제 당신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시겠습니까?

로토도 도덕적인 엄격함에 대해서는 똑같았다. 그녀가 한 모든 것을, 그녀가 정말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로토가 알았다면, 그녀의 피부 밑에서 번쩍거리던 분노를 알았다면, 그가 파티에서 기분 좋게 취해 떠벌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그 아름다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때때로 미워했다는 것을 로토가 알았다면, 그가 아무데서나 툭툭 벗어던지는 신발을, 순식간에 지나가는 타인의 예민한 감정을 대하던 그의 느긋한 방식을, 그들의 집이 세워진 화강암 토대보다 더 무거운 그의 자아를 그녀가 불태워버리고 싶어한 것을 로토가 알았다면, 한때는 그녀의 것이었던 그의 몸을, 그 몸에서 나는 냄새를, 허리의 군살을, 이제는 뼈만 남았을 보기 흉한 몸의 털을 그녀가 이따금 싫어했던 것을 로토가 알았다면, 그는 그녀를 용서했을까? 오, 맙소사, 물론 그는 용서했을 것이다.


로런그로프/운명과분노Fates and Furies/문학동네/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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