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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봄여기 Aug 05. 2021

타인의 고통을 읽는 일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에 대한 분노를 애도하며.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따듯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마음의 견고함에 대해

누군가는
쓰고,
듣고,
떠들고,
영원히 자고.

남은 아이들과 함께 나는 물속에 잠긴 듯 견딜 수 없이 긴 잠의 복도를 함께 걷다가, 허우적거리는 아이들과 죽은 듯이 빠져 있는 아이들을 깨우면서, 얘들아, 이제 강의 끝났어. 누군가의 목소리에 반짝, 나는 되돌아와서.

강의가 끝나고
한 아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저 왔어요. 조금 늦게요."
                                                                                                   <김경인, 빛과 함께 中>


절대 잊혀서는 안 되는 슬픔들이 있다.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것이 아니기도 한, 그러나 공명하듯 우리 모두의 역사이자 슬픔인 어떤 사실들은 속수무책으로 흐르는 시간 앞에서도 퇴색되지 않는다. 세월호는 우리가 아직도 여전히 기억하고, 애도해야 하는 슬픔이다.

지난달 서울시는 결국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기억공간을 철거했다. 시장이 바뀌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은 추모의 공간이 아니다, 세월호의 슬픔을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이 철거 행위를 지지했고, 철거 반대 시위를 하는 유족들을 향해 보수단체들은 극악스러운 막말을 쏟아냈다. 야당과 보수단체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의 흔적을 이토록 빨리 지우려고 하는 건 청산하지 못한, 청산할 수 없는, 청산할 의지도 없는 그들 자신의 과오를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304명의 희생자들이 아직 그 배 안에 있었던 7년 전 그 봄, 국가는 정부는 대통령은 배가 가라앉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전 정부의 무능함이 세월호라는 비극적인 참사를 만들어냈고, 무능함과 부패함으로 결국 대통령은 탄핵당했다. 전 정부 집권당이던 현 야당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 사태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뻔뻔하고 무례한 언행으로 유족들을 모욕한다. 현 야당 소속 국회의원은 자신의 SNS에 '광화문 광장은 특정 단체의 추모 공간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므로 돌려줘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어떤 보수 논객은 블로그에 '세월호, 기억하지 않을 권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주장한 보지 않을 권리 다음으로 웃긴 말이라고 생각했다. 기억하지 않을 권리라니.

세월호는 7년이 지난 지금도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건이다. 5명의 시신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고, 배가 침몰해가는 7시간 동안 부재였던 대통령의 행적 또한 밝혀지지 않았다. 무려 304명이 죽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2014년의 4월로 돌아가 보자. 그때의 차가움,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던 그 고통, 모든 국민이 슬퍼했고, 며칠을 울었다. 시신이 한 구 한 구 바다 위로 올라올 때마다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찬물 샤워를 즐기던 한 지인은 세월호 사건 이후로 찬물에 몸이 델 때마다 세월호에 가라앉아있는 아이들이 떠올라 더 이상 찬물 샤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는 건 아직도 그 사건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먼바다 쪽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아이들은 너무 오랫동안 항구에 붙박여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워졌다. 메아리 없는 울음과 누군가를 간절하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아팠지만 아이들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이들은 바다 위를 떠도는 비탄에 잠긴 목소리를 들었다. 절망에 빠져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와 아버지의 외침을 속수무책으로 듣고 있어야 했다. 아이들은 규가 뭍으로 올라오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우뚱거리며 중심을 잃고 쓰러진 배가 바닷속으로 잠기기 전에 구조선이 도착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커다란 배는 천천히 조금씩 가라앉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배의 침몰을 늦추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그럴 수만 있다면 바다로 뛰어들어 속절없이 가라앉고 있는 배를 끌어올리고 싶었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항구에서 아이들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바닷속이 얼마만큼 깊은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섬으로 가는 바닷길이 길고 험난할 거라고 어느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서성란, 유채 中>


봄이 막 시작될 무렵에 이 짧은 소설을 읽었다. 짧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읽다가 몇 번이나 책장을 넘기지 못해 오래 읽었다. 노란 꽃이 가득한 섬으로 수학여행을 가겠다고 떠난 율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 집에서 소하는 아들 율과 그의 친구들을 위해 율의 생일상을 차린다. 소하는 간간이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공간에서 아들 율을 본다. 아들의 친구인 규의 시체가 바다 위로 떠오르고 율은 "노란 물결로 굽이치는 유채꽃이 아름다웠다고" 소하에게 말한다. 소설 <유채>는 세월호로 인해 영원히 도래하지 못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게 한 소설이었고 그래서 더 슬펐다. 노란빛이 물결치는 유채꽃밭에서 저마다의 포즈로 웃고 있을 아이들의 미래는 세월호 침몰로 영원히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이 슬픔을, 이 원통함을 유족이 아니라면 애도하지 말아야 할까? 7년이 지났으니 이제 그만 잊는 게 맞을까? 당신의 미래가 누군가의 무능함으로 인해 거세되고, 은폐된다면 당신은 그저 가만히 지난날의 과오라 생각하고 잊을 수 있는가?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기억공간이 사라진 것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할 우리 모두의 권리를 침해한 행위다. 역사를 기억하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
둥글고 오목한 돌의 표정을 한 천사가
뒹굴다 발에 채고
이제 빛을 거두어
땅 아래로 하나둘 걸어 들어가니
그늘은 둘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

                                                                                               <김경인, 여름의 할 일 中>


광화문 광장은 진실에 대한 요구를 촉구하고, 슬픔은 애도하며 그렇게 시민들의 손에 의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모두가 함께 만든 열린 공간이다.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 억울한 죽음의 희생자, 공정한 정의를 바라는 시민들이 서로의 슬픔을 공유하고 때때로 분노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로 모아지는 모두의 공간이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을 서울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철거를 강행할 수밖에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궤변을 펼친다. 광화문 광장은 서울 시민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유족만의 특정 슬픔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아픔이고 슬픔이자 기억해야  역사다.  야당   정부의 관료들이 아직도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기는커녕 국민의 애도할 권리를 박탈하고, 세월호 참사를 유족들만의 사건으로 치부하려는 저열한 이간책을 쓰는데도 대형 언론사는 이를 묵과하고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기억의 공간은 사라졌고, 유족들은 유품과 액자들을 챙겨 임시거처로 옮겼다. 그렇게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의 흔적은 사라졌다.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비상적인 일은 벌어졌고 매일 아침저녁 광화문 광장을 지나다닐 때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들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는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김경인의 <여름의 할 일>을 읽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올여름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박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슬픈 것을 왜 자꾸 보느냐, 생각하느냐 한다. 어떤 이는 세상의 밝은 것 좋은 곳도 많은데 왜 굳이 그늘로 들어가냐고 한다. 그런데 이 시인은 누군가 은폐하고, 거세하고, 청산하지 않는 지난날의 과오를 아름다운 은유로 일으키고 돌려세운다. 잊으면 안 되는 고통으로, 슬픔으로 자꾸만 불러 세운다. 나는 이끌림을 자처한다. 우울이 마음을 점령했을 때에도 사람이 싫어 죽겠다 목놓아 분통을 터트릴 때에도 어떤 슬픔들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슬픔 때문에 나는 다시 생의 의지를 조금씩 조금씩 다진다. 누군가는 타인의 고통을 잊으라 하고, 온갖 저열한 방법으로 슬픔을 모욕하지만 나는 버텨내리라 하고. 타인의 고통을, 그늘을 읽는 일에 둔감해지지 않으리라 하고 이 분노를 애도하는 중이다.


#김경인_일부러틀리게진심으로 #서성란_유채 #세월호기억공간 #애도할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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