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밀정> 에 대하여.
글 쓰기 앞서 개인적으로 이병헌이라는 배우에 대한 악감정이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약산 김원봉 선생 역할에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과연 적합했었나 하는 불만과 의구심에서 시작된 글임을 밝힌다.
나는 한 때 6년간 밀양시민이었던 적이 있었다. 중,고등학교를 밀양에서 보낸 이후 줄곧 서울에서 지냈지만 일년에 한 두어번은 아직도 밀양엘 내려간다. 부모님이 아직도 밀양에서 지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밀양 시민이었을 때도 밀양을 좋아하지 않았고, <밀양>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에도(영화는 매우 좋아했지만) 영화 속 배경으로 나오는 밀양에 대해선 시큰둥했다. 전도연이 가슴을 쥐어 뜯으며 들렀던 약국, 송강호가 사장으로 있던 카센터, 아이의 시체를 찾았던 밀양강 기슭까지 눈에 선하고 익숙한 그 장소들이 그리움보다는 당시의 힘들고 우울했던 나를 떠올리게 했다. 밀양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낯선 사람에게는 배타적이며, 보수적이고 친근하게 나를 받아준 적이 없었다. 더구나 나는 서울말까지 쓰는 우울한 아이였다. 그런 내게도 밀양과 관련된 기억 중에 몇 안되는 따듯한 기억들이 있는데 게 중 하나가 바로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한 것이다.
당시는 90년대 후반이었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어서 다른 시기보다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고 하지만 학교 내에서 월북한 작가들의 작품을 배우거나 월북한 독립운동가에 대해서 배우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밀양 출신이면서 백두산 호랑이라 불리던 김일성 마저도 두려움에 떨며 존경해 마지 않던 김원봉 선생에 대해서 고등학생이 학교 역사 시간에 배웠다는 이야기를 여하튼 나는 내 주변에서 내 또래 중에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여당 텃밭인 밀양에서 나는 국사 수업 시간에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해서 처음 들었다. 거침없는 말투와 엄한 태도로 유명한 역사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녀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성향 때문에 곧잘 학교 혹은 다른 선생님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 날은 수업에 들어오시더니 대뜸 아이들에게 "김원봉" 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고 멍하니 교탁 위 선생님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데 이번엔 선생님이 "김구" 를 아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그제야 안도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여기 저기서 아는 체를 했다. 선생님는 그런 우리들을 지긋이 바라보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밀양의 딸들이 약산 김원봉을 몰라서 쓰나
내가 기억하는 한 그때만큼 수업시간에 가슴이 뛰고 설레고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귀를 쫑긋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의열단 단장 김원봉 선생이 어떤 인물이었는지...김일성과의 관계에서부터 그가 어떤 식의 무장운동을 펼쳤는지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일본경찰들이 김원봉이라는 이름 석자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는 이야기부터해서 한국전쟁 당시 밀양만 무차별 폭격을 피한 것도 김원봉 선생의 고향이었기 때문이이라는 사실까지 누구하나 조는 사람 없이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김원봉 선생은 일제순사였던 친일경찰 노덕술이 해방 직후 다시 경찰이 되어 자신을 고문하고 감시하자 월북을 결심했다. 노덕술이 따귀를 때리고 침을 뱉으며 김원봉 선생을 모욕한 이야기를 나는 이때 처음으로 선생님을 통해 들었다. 다들 어찌나 그 이야기에 빠져 있었는지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월북 이후 밀양에 남은 후손들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의 감시와 압박속에서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처형당하고 연좌제에 묶여 제대로 된 직업도 가지지 못한 채 고통받으며 지금도 밀양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전할 즈음이었다.
한 낮의 더운 여름 오후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던 고요한 교실에 훌쩍이는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평소 조용조용 있는 듯 없는 듯 얼굴이 하얗고 키가 작아 앞자리에 주로 앉아있던 친구였다.
여기서 이렇게 김원봉 이라는 이름 석자를 듣게 될 줄은 몰랐어요...외할머니는 절대 할아버지 이름을 입밖으로 꺼내면 안된다고 했어요.
그 아이의 외할머니는 살아있는 김원봉 선생의 유일한 혈육 김학봉 여사였고(김원봉 선생의 막내 여동생), 그 할머니의 아들이 그 친구의 아버지였다. 아이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었던 아버지에 대해서 말할 때 다시 서럽게 울었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울분과 설움을 토해내는 아이를 먹먹한 마음으로 바라볼 뿐 그누구도 말이 없었다. 선생님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그 아이에게 너무 용감하게 잘 버티었다고, 김원봉 선생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아이는 아마도 열일곱 평생 살아오는 동안 입밖으로 절대 꺼내면 안되는 이름 석자로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기억해야 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면서도 늘 경찰의 감시와 억압속에서 가난이 일상처럼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공개적으로 "김원봉"이라는 이름을 들었을때 기분이 어땠을지...그 울음의 깊이를 당시의 나로선 가늠할 수 없었다.
영화 <암살>에서 잠깐 등장한 김원봉 선생(조승우)에 그제야 사람들은 김원봉이 누군지 관심갖기 시작했다. 나는 영화에 잠시 등장한 김원봉 선생이 반가웠고 사람들이 영화 때문이라도 그의 이름을 알아가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슈가 될 때마다 17년 전에 김원봉 선생을 알게 해준 그 역사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영화 <밀정>은 개봉하기 전부터 의열단 이야기라는 정보를 알고 있었으므로 김원봉 선생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겠거니 기대가 컸다. 김원봉이라는 이름 대신 정채산 이라는 이름으로 둔갑된 캐릭터에도 설득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건만...공유와 송강호가 탄탄하게 만들어놓은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이병헌 이라는 배우가 정채산으로 나오면서부터 다 하물어트린 느낌이 들었다. 김원봉 선생을 바탕으로 만든 정채산 이라는 역할에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등장하면서부터 영화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엔딩에서 "실패해도 앞으로 계속 나가야 한다."는 이병헌의 나레이션이 나올 때즈음에는 불쾌감 마저 들었다. 분명 훌륭하고 좋은 말인데 왠지 이병헌 개인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고...대외적으로 설득력 차원에서 그 가치가 협소해지고 하락해버리고 만 느낌을 주는 것이다. 나는 <암살>보다 <밀정>이 스토리면에서나 깊이면에서 훨씬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원봉 선생을 모델로 하고 있는 정채산 역할에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캐스팅 때문에 영화는 사실성 및 현실성 모두 잃고 만다. 그리고 그 점 때문에 <밀정>은 찜찜한 영화가 되었다.
밀양에는 아직 김원봉 선생의 후손들이 살아있고, 그 아이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작년 연말에 동창 결혼식때문에 졸업이후 처음으로 만나게 된 그아이에게 나는 "여~ 김원봉 선생의 후손!"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그리고 그녀의 아들이 김원봉 선생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 가족들이 겪었을 고초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고초를 딛고 지금의 삶을 견디고 행복을 꾸려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 후손들을 생각한다면...<밀정>의 이야기가 마냥 영화 속 한 장면, 영화 속 한 인물,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약산 김원봉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 경향신문 기사를 공유한다. <밀정> 정채산의 모델, 약산 김원봉이 궁금하다면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