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이 처음인 상황에서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놀랍고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부모는 처음 경험해보는 역할이다.
처음이라 더 어렵고 복잡한 부모라는 역할에 부담을 더 가중시키는 혼자가 되었다.
막막하다. 둘이 함께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퍽이나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딸이 3살부터 초등학교 5학년이 되기 까지. 나와 함께 보낸 시간보다 할머니와 삼촌과 함께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이런 나에게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했을지 모르겠다.
"자식도 내팽개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산다."
"이럴 거면 아이를 왜 데려왔냐."
등등의 비난을 내가 모르는 사이 나를 저격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랬다.
나도 어렸지만 아빠였다. 그래서 힘든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약한 아빠라는 인식을 각인시켜 주고 싶지 않았다.
도망 다녔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아이에게 숨기고 왜곡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아이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를 하고 싶었다.
"너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미안해, "
"미워서 혹은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아빠는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해."
"아빠 용서해줄 수 있어?"
이런 말이었다.
아이는 울면서 나에게 와서 안겼다.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불행하다는 것을 숨기고, 내가 힘들다는 것을 숨기면 이 쪼그만 아이는 전혀 알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건 그냥 말 그대로 내 생각이었다.
아이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에도, 유치원을 다닐 때에도, 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에도 그저 아직은 어린아이로만 알았다. 아직 어리기에 아빠인 나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번 '나중에 크면 다 이야기해줘야지'
아이는 다 알고 있었다. 아빠를 자주 보지 못하지만 '우리 아빠가 많이 힘들구나', '아빠가 많이 아파하는구나', '아빠가 많이 외롭구나.'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나 역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들을 아이는 모두 알고 있었다.
이 날 이후 나는 후회를 했다.
'차라리 그때그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아이에게 공유를 했어야 했다.'
아이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함께 겪고 있었다.
나는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내가 괴롭다는 이유로 내 아이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삼촌이 잘 돌봐주겠지'
물론 할머니와 삼촌이 아이에게 참 잘 챙겨주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보듬어주지는 못한다.
이혼으로 힘들어했던 시기에 아이도 나의 이혼으로 똑같은 감정과 두려움을 겪고 있었다. 즉, 같은 시기에 같은 감정을 겪고 있는 우리 둘 만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의 어두운 순간들을 혼자 이겨내려 욕심을 부리다가 그 어두운 곳에 아주 작고 어린 내 딸이 내 옆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해버렸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겨내는 방법을 생각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