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에 책임이 있는 나이
오래전에 이런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정확하게 문장이 생각이 나지 않지만 대략 내용은 기억한다.
‘젊은 시절 10대 혹은 20대의 외모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외모이지만 중년의 외모는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
40대가 지나서의 외모는 자기가 살아온 삶과 성격과 태도를 나타낸다는 말이다. 당시에 이글이 제법 충격이었나 보다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다.
언젠가부터 이 말이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배우자와 딸아이에게 적용시키고 있었다. 나의 행동 혹은 나의 생각이 내 가족에게 반영이 되고 그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들의 외모에 내가 차지하는 지분이 제법 있다.
즉 내 아이가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어두운 표정이 얼굴에 투영되고 그 표정이 결국 아이의 얼굴이 된다.
무서웠다. 나는 좋은 아빠도 아니었고 자랑스러운 아빠는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즈음부터 노력했다. 좋은 아빠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아이의 얼굴에 항상 밝은 빛만 남아있게 하고 싶었다.
내가 조금 힘들게 살더라도 아이에게 여행을 선물하고 싶었고 나는 라면을 먹더라도 아이와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이 사소한 생각의 차이가 생각보다 큰 변화 그리고 생각보다 금방 바뀌었다. 아이는 한층 밝아졌고 나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좋아졌다. 무서운 아빠가 아니라 장난이 심한 아빠가 되었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던 아빠에서 웬만한 건 다 해주는 아빠가 되었다.
아이는 나에게 다가와 기대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아이를 괴롭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혼 전의 나의 모습은 가부장의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아내가 무엇을 입고 무엇을 신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치장하기에도 벅찼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명품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보다. 내 여자 친구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것이 더 행복하고 더 기분이 좋다.
오토바이 기변을 하려고 몰래 모아둔 돈으로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금 팔지를 맞췄다. 물론 커플로 맞췄다. 여행을 가고 깊어하는 눈치라 올여름은 가능하다면 그렇게 바라는 일본 여행을 갈 계획이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내 가족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의 행복을 알았다. 내가 열 번 웃는 것보다 내 가족이 한번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큰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며칠 전 아이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미리 했다. 그렇게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패드를 사주었다. 사실 처음에는 중고를 알아보았다. 열심히 중고 마켓을 검색하다 그만두었다.
'나는 절대 중고를 쓰지 않으면서 왜 내 딸에게는 중고를 사주려고 하지?'
그러고는 매장에 가서 아이패드 에어 5세대를 사전 예약했다. 시원하게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에 아이가 물었다.
"아빠 100만 원은 큰돈이지?"
"응 엄청 큰돈이지"
놀라는 눈치였다. 마치 '내가 이렇게 비싼 걸 받아도 되나?'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디즈니랜드에 가는 돈은 300만 원이 넘었어~"
아이의 눈이 더 커졌다.
"아빠는 왜 이렇게 큰돈을 쓸까?"
"글쎄..."
"그 돈은 아주 큰돈이지만 아빠는 우리 가족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 돈보다 더 커서 그래"
알아들었는지 알아듣지 못했는지 그건 알 수 없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족의 행복은 돈으로 환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아빠의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는 뭔가 구차해 보이고 모양이 빠지는 거 같아서 그냥 조금은 어렵게 못 알아들을지도 모르는 애매모한 표현을 사용했다.
내 가족은 항상 웃으며, 외모에서 빚이 나는 그래서 옷이 혹은 액세서리가 명품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명품인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럼 나는 무엇보다 비싼 명품을 옆에 두고 살고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