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혼의 아픔은 치유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의 아픔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내 삶이 모두 망가졌다는 생각.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는 생각.
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큰 상처를 받았다는 생각.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여행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당당하게 웃으며 대해도 결국 집에 돌아오면 혼자다.
그럼 어김없이 이런 절망과 고통이 나를 찾아왔다.
더 이상 행복한 삶은 없을듯한 생각이 온 방을 가득 채웠다.
지금에서야 솔직히 말하자면, 해서는 안될 생각을 한적도 있다.
그만큼 나에게 미래는 불 꺼진 나의 원룸보다 더 어두웠다.
유서를 적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적었다.
그리고 그 유서를 제법 오래 나는 숨겨두었다가 지웠다.
정말 이 지독한 삶을 끝내기 위해서 적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 지긋지긋한 내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였다.
신기하게도 나의 유서 내용은 지독한 원망과 자아비판으로 시작해서 결말은 달랐다.
"그래도 행복했다."
마주치기만 하면 고성이 오가던 엄마가 있어 고마웠다.
형 노릇을 1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묵묵히 지켜봐 준 동생이 든든했다.
그리고 비록 나에게 뼈아픈 상처와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게 해 준 그 사람에게도 고마웠다.
무엇보다 세상 가장 못난 아빠를 둔 딸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아빠라고 웃어주던 모습이 마음을 녹여주었다.
나에게는 아직 가족이 남아있었고, 친구는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옆에서 들어주던 몇 안 되는 친구가 있었다. 조언이 필요할 땐 조언을 해주었고 그저 들어주기만 하기도 했다.
"그래 아직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로 과거의 나는 죽었다.
그날부터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았다.
그리고 완벽히 새로운 사람이 되기까지 그 유서는 저장되어 있었다.
대략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결국 시간이 약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절망 속에서 빠져나왔을 때 비로소 주변이 보이고,
사람들의 진심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