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 있어서 슬픔이 없는 장례식은 없다.
수많은 이별의 슬픔 속에서 가장 슬픈 장례식을 꼽자면 자녀상이다.
결혼하지 않은 자녀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상황.
많은 장의사들도 이러한 장례를 가장 마음 아파한다.
더욱이 고인이 나보다 어린 상황이라면 더 그렇다.
30대, 20대, 혹은 더 어린아이의 경우도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나도 자녀가 있는 부모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의 유족들을 만나면,
최대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그 슬픔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겠지 라는 건방진 생각은 아니다.
그냥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
젊은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인 듯하다.
분명하고 싶은 것들도 많았을 것이고,
무엇이든 할 기회도 많이 있을 텐데 그 모든 것을 놓쳐버린 안타까움.
나는 사실 고인이 생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다음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는 이곳에서의 삶보다는 조금이나마 좋은 경험, 환경이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보내는 것이다.
사실 젊은 사람들의 사인은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런 경우 할 수만 있다면 이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다.
"당신의 선택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슬퍼하고 힘들어합니다."
너무나 힘든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랬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너무나도 안타깝다.
남은 가족은 평생을 죄책감에 살아갈 것이다.
부모의 마음은 그렇다.
자식이 아파서 오랜 기간 병과 싸우다 세상을 떠나도 부모는 스스로를 탓한다.
하물며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맞이한 부모는 그 마음이 더하다.
이런 경우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미안하다.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런 말들이다.
부모님을 떠난 보낸 자녀들은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모든 순간이 슬픔에 잠겨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자식을 보낸 부모님은 1분 1초도 슬퍼하지 않는 순간이 없다.
단 한순간도 밝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이런 생각들을 할 것이다.
"너무 힘들다. 삶을 끝내면 이 고통도 사라지겠지"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
혹시라도 이런 상황의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딱 한마디만 해주고 싶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요. 이 고통과 함께 끝낸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당신의 선택으로 고통이라는 놈은 모습만 바꿔 당신을 가장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옮겨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