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란 감정에 무뎌지나요?

by 글쓰는장의사

가끔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아무래도 매일 슬픔을 접하는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다.


가끔 혼자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아 죽음이 가져오는 슬픔에 대한 감정이 조금 무뎌졌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모든 슬픔에 무뎌지지는 않는다.

10년 차 장의사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슬픔은 분명히 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되는 분들.

모든 죽음에는 슬픔이 따르지만, 젊은 분들의 죽음에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몇 년 전 당시 딸과 같은 나이의 고인이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고,

의사는 몇 년 살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10년을 넘겼다.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의사의 진단보다 오래 살았다는 말을 전할 수 있을까?

아니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마음의 준비를 했을 테니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지 않을까?


절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자식을 잃은 부모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10년을 하루하루 기적처럼 살았을 분들이지만,

당장 내일 아이가 떠나도 이상할 것 없다는 것을 알고 살았을 테지만,

막상 자신 앞에 다가온 차가운 아이를 보면, 그것을 쉽게 인정할 부모는 없다.


당시 딸과 같은 나이여서 더 감정이입이 되어서 인지, 3일 동안 나는 눈물을 참느라 고생했다.

또 한 가지 더.

나 자신의 과거가 투영되어 슬픔을 참기 힘든 경우도 있다.

상주. 즉, 고인의 아들 나이가 20대 중반이거나 더 어린 경우.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 나이가 27살이다.

이런 케이스의 경우 10여 년 전 나의 모습과 감정이 생각나기도 한다.

장의사 역시 사람이다.

업무 특성상 슬픔을 자주 대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감정을 갖고 있다.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지만,

슬픔이 길어지면 생각보다 엄청난 체력적 부담이 온다.

그래서 가끔 나는 유족들이 잠시나마 슬픔을 잊을 수 있게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불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장의사는 고인만 모시는 사람이 아니라

남은 가족을 안내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장례기간 동안 보살펴드리는 사람이라 믿고 있다.

아마도 나는 계속 가족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는 장의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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