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하지 않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 돌잔치, 장례식 모두 참석을 한다.
하지만 딱 하나 하지 않는 것이 생겼다.
바로 병문안이다.
오래전 일이다.
아는 분이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병문안을 갔다.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병실에서 나왔다.
병실 문을 닫으며 한 마디가 들려왔다.
"만약 돌아가시면 꼭 연락할 테니 걱정하지 마"
당연히 부고를 보내겠다는 말이라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병원을 나서는데 이상하게 그 말이 떠나지 않고 나를 쫓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찝찝한 기분은 왜일까?'
나중에 건너 건너 그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너무 속상했다.
대화라는 것은 말이 전부는 아니다.
행동, 눈빛 등이 여러 가지 의미를 전달한다.
같은 말이라도 충분히 다르게 드릴 수 있다는 말이다.
당시 내가 받은 느낌이 틀렸길 바랐고,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당시 나의 느낌이 맞았다.
너무 서운하고 속상했다.
하지만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 직업이 장의사이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나의 의도를 오해할 수도 있겠다.'
대부부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얼마나 남았는지 보러 온 건가?'
'자기한테 장례를 맡기지 않을까 봐 불안해서 왔나?'등
갑작스러운 상황에 경황이 없고,
마음이 복잡하니 그럴 수 있는 상황이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병문안을 가지 않는다.
특히나 위독한 경우의 병문안은 절대 가지 않는다.
그저 전화나 문자로 마음만 전달한다.
"가끔 기분 나빠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찾아뵙지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정적인 인식을 하는 사람은 정말 극 소수 이겠지만,
상대방이 그중 한 사람일지도 모르니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