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딸의 아빠가 나라서 미안할 때가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하교시간, 갑작스러운 비가 오면 학교 앞은 우산을 든 엄마들로 가득하다. 맞벌이를 하던 우리 엄마는 없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초3 혹은 초4였을 것이다. 비가 엄청나게 오던 날이었고 역시나 내손에는 우산이 없었다. 당시 이사를 했던 우리 집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예상처럼 집에 도착했을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어있었다. 나름 내가 기특한 것은 당시에도 엄마를 원망하거나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날들이 쌓여서 내 아이의 엄마는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 차이가 5살인 동생은 내가 유치원 통학버스가 도착하는 곳에서 우산을 들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동생을 위하는 마음보다 그저 비를 맞고 오면 그 뒤치다꺼리가 더 귀찮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내 동생 놈은 나의 그런 노력을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의 안 좋은 기억이나 불만은 없다. 다만 하교 후 집에 가면 빈집이었던 것이 좀 아쉬웠다.
퇴근 후 빈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누군가 반겨 주길 원했고, 아니 반겨주지 않아도 인기척이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환경은 그리 오래 허용되지 않았다. 사람이 있어도 없는 듯이 있었다. 그렇게 있던 사람마저 곧 없어졌다.
퇴근 후 집에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비가 왔다. 아이는 학교에 있었다. 마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차를 세워두고 기다렸다. 저기 교문 안에서 작은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뛰어오는 딸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보더니 너무 환하게 웃는다. 퇴근하고 쉬지도 못하고 나오는 것을 귀찮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저 작은 아이가 비를 맞고 할머니 가게로 가는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졌다. 이런 생각을 할 때쯤, 딸아이의 모습이 오래전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나오길 참 잘했다’
“어라 아빠다~~”
“얼른 타”
무뚝뚝하게 던지고는 운전석으로 갔다. 그래도 아이는 내가 반가웠나 보다.
“아빠 고마워 히히히”
역시 딸은 딸이다. 감정표현을 나보다 백만 배는 잘한다.
표현은 안 했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엄마 생각이 났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내가 많이 신경 쓰였겠다’
아들만 둘을 낳은 죄로 우리 엄마도 감정표현을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당시에 표현은 안 했지만 나에게 아니 우리한테 참 미안했겠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겠다.
내 자식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나는 내 아이가 나보다 더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기를 바랐다. 욕심이 너무 과했을까? 내 딸에게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 딸은 너무 밝게 자랐다. 밝은 척하는 건지 밝은 건지 모르겠다. 전자든 후자든 내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가끔 나는 '아빠'라는 이름이 많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