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둘이서 나들이는 무서웠다.

- 피해의식이 강했나 보다.

by 글쓰는장의사

아이와 둘이 남겨졌던 때, 딸은 막 두 돌이 지났을 때였다. 우리 나이로 3살. 나도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았고, 아이도 불안해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당시에는 가급적 여기저기 나들이를 많이 다니려고 노력했다. 아쿠아리움, 바닷가, 동물원 등 당시 액션캠을 사서 아이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최대한 담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딸과 둘만의 나들이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두려워졌다. 결코 핑계는 아니다. 그저 피해의식이 강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함께 가까운 곳에 나들이를 나가면, 언제나 내 눈에는 우리 아이 또래의 아이가 부모와 함께 나와 즐겁게 노는 모습이 보였다.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그리고 그 부모들이 딸과 나를 보는 눈빛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 그저 내 느낌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저 내 피해의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분위기가 싫었고, 혹여나 딸이 그런 분위기를 느끼지 않을까 무서웠다.

"나도 저 친구처럼 엄마랑 아빠랑 같이 오면 좋을 텐데"

혹시라도 이런 말을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해야 될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서였다.


가급적 주말은 피했다. 평일에만 가려고 하다 보니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평일에도 가지 못했다. 생각보다 평일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집도 많았다. 그리고 그 나이에는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딸도 고집이 강했다. 그리고 대화가 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저앉아서 나와 기싸움을 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고비가 왔다.

"애기야 엄마 어딨어?"

그렇다. 사람들은 아무도 아빠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모두가 엄마의 위치를 물었다.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하는 딸의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쭈뼛거리는 아이를 막아서고,

"감사합니다. 제가 아빠예요. 애가 고집을 부려서..."

그 순간을 피할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그저 아이를 강제로 안아서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아이도 원하는 해결방법이 아니고, 나 역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아이의 아픔을 잊게 하려고 했던 나들이가 오히려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을 다니던 시기에는 한창 키즈카페에 푹 빠져있었다. 가끔 쉬는 날이면 아이와 함께 키즈카페를 갔다. 거기에는 꼭 아이 친구와 그 부모 혹은 엄마가 있었다. 붙임성 없는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아이에게 과자를 사주는 게 전부였다. 여기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예민하게 생각한 건 아닌가 혹은 괜한 피해의식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내 선택에 대한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와 함께 숨거나 피하기만 했던 거 같다. 과연 내가 했던 행동이 아이에게 득인지 실인지 아직도 판단이 잘 안 선다. 다만 당시 아이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하다.


그래도 아직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시간이 될 때마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많이 갈 계획이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 딸은 벌써 해외를 세 번 나갔다.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아니 평범한 아빠로 변해가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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