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마음으로 이혼을 결정하였을까?
"애가 다쳐서 병원을 가고 있다고 하자나 빨리 가자!"
"무턱대고 화낸 거 사과해! 안 그러면 난 못가"
"지금 이 상황에서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거야?"
"응"
"그래 미안하다. 이제 가자"
"진심이 아닌 거 같아"
"지금 장난해? 애 상태보다 너의 감정이 우선이라는 거야? 나중에 따져도 되는 문제 아니야?"
"나한테는 지금 이 서운한 감정이 더 중요하거든!"
"혼자 간다"
아이의 건강보다 본인의 감정이 우선이라는 말에 이혼을 결정했다. 누군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큰 문제도 아닌 걸로 이혼을 하느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에게는 그저 이혼을 위한 구실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나마 옷자락 끝부분을 힘겹게 잡고 있던 결혼생활이 이 일을 계기로 놓쳐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혼의 사유는 대부분 사소한 사건이다. 분명 남들에게 그 사유를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사소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 이혼 사유를 물으면 '성격차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다툼이다. 남들이 들으면 '뭐 이런 일로 이혼을 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경험을 통해서 결코 그 사건이 이혼을 결정하는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쉽게 남들처럼 '별일도 아닌 걸로 이혼을 했구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전혀 반대로 생각이 된다.
"이 정도 일로 이혼을 할 정도라면, 그동안 많이 참고 힘들었겠구나"
이혼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대가 이혼을 하자고 할 만큼 잘못한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방금 당신이 들었던 그것이 이혼을 하는 이유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많은 실수 혹은 잘못을 했다. 그리고 이혼을 말한 당사자는 분명 그 수없이 많은 횟수만큼 경고를 하기도 타이르기도 했을 것이다. 그저 당신이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불 같이 화를 내기도 했고, 조용히 타이르기도 했고, 의논을 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나마 불 같이 화를 내고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나고 나면 당분간은 잠잠했다. 그렇다고 매번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기도 힘들었다. 결국 나는 지쳐버렸다. 그리고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래도 이혼이라는 결정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혼에 대한 두려움과 명분 때문이 아닐까?
내가 먼저 이혼을 이야기했다. 그 사람은 당황하는 기색도 있었지만, 쉽게 동의했다. 그리고 그 후 몇 번의 유도는 있었다. 단, 자신이 틀렸다거나 잘못했다거나 하는 져주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그때 무조건 잘못했다며 저자세로 나왔다면 내 마음이 조금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당시 나는 속으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사과하지 마. 저자세로 나오지 마. 끝까지 자존심을 세워라.'
그래야 내가 미련 없이 후련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내 바람(?)과 예상대로 나왔고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었다.
이혼을 결정하는 마음가짐은 아마도 아주 독한 결심이다. 이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는 아니다. 연애 때 서로 죽고 못 사는 그런 감정을 계속 유지하며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 사랑이 식어서 이혼을 해야 한다면 대부분의 부부는 유지되지 못한다. 이혼은 단, 한 가지 이유로 결정이 되는 듯하다.
'이성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정이 떨어져 버리는 것'
이혼한 사이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즉, 내 기준에서 더 이상 그 사람은 지나치는 누군가보다 못한 사람이 된다. 내 경험상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동정심마저 들지 않았다.
이혼을 경험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은 이혼을 한 소수의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참 독하다"
그래 독한 마음 없이 이혼을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 번쯤은 반대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죽하면 그 독한 마음을 먹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