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그어둔 선을 우리의 기준이라 혼자 결정했었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그저 속도를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려하되 끝내 이해하지 못하면 서로 부딪치는 것까지 감내하는 게 아닐까?
이기주 -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서점에서 제목이 너무 이뻐서 한번 펼쳐보지도 않고 잡은 책이다. 책 속에 이 문장은 나의 결혼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이해하려고 노력은 확실히 했다. 하지만 감내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감내하려 했고 최대한 물러섰다가 포기해버린 것은 감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포기했기에 감내하지 않은 건가?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편, 남편과 거리를 둔 아내, 불만이 쌓인 남편, 결국 아이와 남편을 버리고 떠난 여자.
둘 다 감내하지 못했다.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은 했다. 분명 그런 시기가 있었다. 맞지 않음을 맞추려 했고, 이해되지 않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분명 존재했다. 이 부분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나? 그럼 둘 다 감내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각자의 길로 갈라졌다.
어디까지 감내를 해야 하나? 그 한계점이 나의 책임감의 한계인가? 아님 상대방에 대한 마음의 한계치 인가?
도저히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한계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 그리고 상대방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럼 상대방에 대한 나의 마음이 그 한계점을 결정하는 건가?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정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하루 종일 틈날 때마다 고민했다.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앞으로 또 누군가가 이혼 혹은 결혼생활에 대해 물어오면 나는 어떻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 옳은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나도 모르게 이혼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는 틀속에서 생각을 했다. 그래서 누가 더 감내하지 못했나만을 생각했다. 애초에 틀이 잘못되었다. 이혼은 범죄가 아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고, 일방의 책임도 아니다. 이혼은 쌍방의 결정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혼을 했다는 것은 서로 감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즉, 내가 더 했고, 네가 덜했고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저 서로 한계치를 넘어선 것뿐이다.
이런 생각을 한적도 있다.
'나는 이만큼 참고 있는데, 왜 저 사람은 전혀 나를 이해해주지 않지?'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은 감내가 아니다. 그저 말 그대로 참았다. 참는다는 것은 언젠가는 튀어나오게 되어있다. 삭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속에 잠시 눌러두는 것이 참는 것이다. 결국 나는 감내하지 못했다. 이해해주기를 바랐고, 이해하려 노력은 했으나, 이해하지 못했고, 감내하지도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아니 사랑하는 마음은 식었지만, 내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람이기에 평생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결혼이다. 즉, 결혼을 한다는 것은 평생 당신을 감수하겠다는 맹세이고 약속이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잊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고 고집부리며 살아왔다. 아니 투정을 부렸다고 해야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까지만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 더 이상은 용납 못해!"
"이만큼은 내가 감수할게 대신 이 이상은 나도 해줄 수 없어"
이런 말을 뱉어본 적은 없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