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아빠! 우리 놀러 갔을 때 비 엄청 와서 홍수 났었어 그렇지?”
비가 오는 날이면 딸아이의 입에서 항상 나오는 말이다.
작년 여름 지금 여자 친구와 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처음으로 여행을 갔었다. 장소는 경주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비가 엄청 쏟아졌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펜션에 있기만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보다. 매번 비가 올 때면 그날을 떠올리는 걸 보면 나름 기분 좋은 하루였나 보다.
나의 기억 속에도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가족여행의 한 장면이 있다. 아주 어릴 때라 정확한 지명은 모르지만 한 계곡에 텐트를 치고 나와 동생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휴식을 즐겼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고 계곡물은 순식간에 불어나기 시작했다. 아빠는 엄마와 우리를 먼저 차로 보내고 그 폭우를 맞으며 텐트와 짐들을 혼자서 챙기기 시작했다. 차가 그곳을 빠져나 올 때쯤 창문 밖으로 내가 본 풍경은 공포였다. 불과 몇 분 전에 있던 텐트 자리는 이미 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본인은 온몸이 다 젖었지만 그 덕에 우리는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무섭기도 하지만 아빠의 능력(?)을, 그 넓은 어깨와 등판을 확인하게 되는 경험이기도 했다. 우리 딸은 그날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뭐가 그렇게 재밌었어?”
“아빠가 고기 구워줘서 먹은 거!!”
나는 그저 비바람과 싸워가며 불이 꺼지지 않게 노력하며 테라스에서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역시 맛은 있었다. 여자 친구는 아이와 저녁상을 준비하고 밥을 먹은 후 영화도 같이 보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우리 아빠에게 느낀 감정과는 다른 것 같다. 나는 그날 아빠의 든든함을 느꼈다면, 내 딸은 아빠의 따뜻함? 장난치는 편안함? 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실 나는 그날 너무 아쉬웠다. 날씨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많은 곳을 둘러보고 사진도 많이 찍어주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펜션에서만 시간을 보낸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아쉽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내 딸은 그날 참 많은 것을 하고 아주 행복한 1박 2일을 보내고 왔나 보다.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지 못한 거 같아 미안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아빠들도 자주 아이와 여행을 가지 않을 거라는 자기 위로로 마음을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