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이 담긴 맛없는 볶음밥

- 아이를 위한 나의 첫 요리라고 말하면 거창한 먹을 것.

by 글쓰는장의사

어쩌다 보니 아이와 둘만 집에 있었다. 우리 부녀는 면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빠 짜장면"이라고 외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아빠가 짜장면이라는 말은 아니겠지 하는 걱정과 함께 배달앱을 켰다. 그 순간 귀신같은 타이밍의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애랑 또 면 시켜먹으면 혼나요!"

여자 친구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혹시나 나 몰래 cctv를 설치 한건 아닌지 하는 의심을 하기는 했지만, 나를 걱정해주는 모습에 흐뭇해했다. 하지만 이 흐뭇함도 오래가지 못했다.

"오빠는 괜찮지만 애는 자꾸 면먹으면 안 좋아요"

그랬다. 나는 30대 중반 건장한 남자이기 때문에 1년 365일 하루 3끼씩 1,095끼를 면을 먹어도 죽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사실 반 강제적으로 아이를 위한 밥을 시작했다.



'밥솥에 밥 있어요'

이 메시지를 보는 순간 계란 프라이도 할 줄 모르는 나에게 초등학교 3학년의 입맛에 맞는 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척이나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선견지명이었을까? 문득 나의 어린 시절에 동생과 나를 위해 아빠가 해주었던 맛있는 볶음밥이 생각났다.


"그때 옆에서 보고 있길 잘한 거 같아"

나는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큰 냄비에 밥을 넣고 참기름을 두르고 냉장고에 있던 반찬들을 조금씩 넣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불을 켜고 마구 볶았다. 얼마 후 뭔가 촉감이 퍽퍽함이 느껴져 식용유를 뒤늦게 첨가했다.


마지막 피날레는 냉장고에 누워있던 치즈 두장이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밥을 가로질러 치즈 두장을 넣은 뒤덮어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그리고 아이와 마주 앉아서 밥을 먹었다.

보기에도 맛없어 보이는 밥


"아빠! 진짜 맛있어!"

"정말? ㅎㅎㅎ 아빠도 한번 먹어 볼게"

이날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 딸은 아주 효녀다.

'아 내가 인생을 실패의 연속으로 살았지만 딸 하나는 효녀를 낳았구나'


정말 맛이 없었다. 몇 숟갈 먹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김자반을 넣었다. 그나마 먹을만해졌다. 다 먹은 뒤 아이의 한마디에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아빠 다음에 또 해줘!!"

"너 맛없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빠한테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아빠는 정말 맛없었거든"

"아냐! 진짜 맛있었어 ㅎㅎ"

아이의 미각을 뺏은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나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래 역시 맛이 없었나 보다."

우리 딸은 정말 맛있었으면 배고플 때마다 사달라고 말한다. 혹은 뭐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말을 한다. 그런데 한 번도 아빠표 볶음밥은 그 조그만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딸! 아빠가 요리는 재능이 없나 봐. 그러니 빨리 커서 네가 밥을 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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