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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y 02. 2016

파란 지붕 산토리니

그리스#1 산토리니 여행

사진 한 장으로 사람을 이끄는 그런 곳이 있다.

산토리니가 그랬다.

하얀 담장과 파란 지붕의 산토리니는 언제나 나를 강하게 유혹했다. 어쩌면 청순한 어느 여배우가 원피스자락과 긴 머리를 휘날리며 산토리니 이아마을을 거니는 모습에 심하게 나를 이입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혼자서 훌쩍 훌쩍 잘도 떠나는 나이건만 산토리니에 혼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 산토리니 여행을 계획하던 친구의 휴가일정이 어그러지는 일이 생기지만 않았더래도 나의 산토리니 여행은 좀더 이르지만 덜 로맨틱한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결혼하고 연달아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직장생활을 하느라 지친 몇년사이에도 산토리니는 나를 부른다. 아이가 장염에 걸려 이온음료를 마시게 하며 탈수를 막아야 할 때  게토00아닌 포카리스00를 굳이 챙긴다. 그럴때마다 또다시 산토리니를 떠올린다. 망할 음료수 광고때문이얏!


건강하게 직장생활만 잘하면 되던 나인데 아내노릇, 엄마노릇, 며느리노릇까지 갑자기 책임이 많아지니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게다가 나의 살아가는 낙이지 에너지였던 여행을 마음껏 하지 못하니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다. 비행시간이 멀지 않은 동남아시아의 휴양리조트에서 튜브를 잡아주고 물놀이해주는 것이 다인 여행도 지루할 뿐이다.


이런 불만속에 드디어 화산과도 같은 폭발력으로 나는 선언한다.


' 나, 이번 여름에는 산토리니 갈거야.

당신이 애들을 보든 따라오든 마음대로 해.'


산토리니가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아내를 혼자 보내기 싫어서 남편은 본인도 가겠다고 나선다.


자, 그렇다면 애는 어찌할 것인가, 결국 친정에 한 명, 시댁에 한 명 아이를 각각 부탁드리고 감사의 뜻과 두둑한 용돈을 챙겨드렸다. 믿을만한 곳은 가족밖에...결혼하자 마자 애 둘 낳아 키우며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 하면 서러울 정도로 바쁜 직장을 다니는 아들며느리가 안스러웠다고 하신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그리스로 날아갔다. 산토리니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리는데 드디어 왔구나 싶은 생각에 가슴이 벅차더라. 마치 소원풀이한 것 마냥


친구에서 갑작스런 고백으로 연인이 되고 연인이 되자마자 청혼을 하였고 청혼을 하자마자 날을 잡아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내리 두 아이를 낳았다. 연애결혼으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는 부부지만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해 본 적도 없고 신혼이 뭔지 연애가 뭔지도 모른 체 갑자기 가족이 된 우리 두 사람이다. 그런 우리가 산토리니에 함께 발을 내딪다니!


파란 원피스로 갈아입은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하얀 담벼락 사이사이를 걷는다. 저녁이면 해지는 시각에 맞춰 세계3대 석양이라는 산토리니의 석양을 보러 나선다. 사진기에 담아보려 무거운 신형 DSR도 가져와 보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차마 담아내지 못한다.


에이, 괜히 사진찍느라 힘쓰지 말고 실컷 보고 기억하자. 어차피 찍어도 실제만 못하쟎아


해가 지고 나면 절벽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자리한 카페들 어느 한 군데 발길닿는 곳에 들른다.  달빛에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이 그리도 달고 시원할 수가 없다. 저녁을 이미 먹은 우리는 안주겸 새우요리 하나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던 직원은 자꾸만 이거 1인분이라고 강조한다. 더 시켜야 한다는 말은 없지만 두 사람이 와서 1인분을 시키니 종업원도 이상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이미 저녁을 먹어서 1인분만 시킨거야...두 사람이라 혹시 더 시켜야 하니?


그건 아니라 하지만 갸우뚱거리며 뒤돌아서는 그의 모습을 보니 영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 부부는 그 기억을 나누며 지금도 해결되지 않을 걱정을 한다.


' 혹시 우리가 가난한 동양인이라 1인분만 시켰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나는 산토리니 이후로 남편과 이리도 많은 여행을 함께 하게 될 줄 몰랐다. 그리고 점점 혼자 여행가고 싶어하게 될 줄도 몰랐다. 그땐 둘이어서 참 좋았는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내 인생 통틀어 최고의 여행지를 뽑으라면 망설임없이 산토리니를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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